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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 기본소득론'은 가능한가? (2)어느 사회민주주의자의 제안, 사회책임 기초보장의 실현 전략 모색

<'사회민주주의 기본소득론'은 가능한가? (1)>에 이어서

1층 짓기 : 첫 시작은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증세 운동이어야

 

   
▲ 기본소득제의 단계별 확장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책임 기초보장'의 첫 단계는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증세 동맹이다(여기서 ‘노인기본소득’이라는 명칭 대신 그냥 ‘노인연금’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다만 그 내용만은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이라는 기본소득의 요건을 만족하길 바라는 점에서 ‘노인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쓴 것뿐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그러나 언어가 갖는 정치적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역시 최상의 전략은 그래도 기본소득 명칭을 붙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이는 일종의 1-2-3층을 짓는 보편복지 로드맵의 서막을 널리 알리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무상의료'와 '노인기본소득'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보편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매우 핵심적이라고 여긴다. 의학의 한계가 아닌, 그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건 그야말로 기본적인 국가적ㆍ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해당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사회적 자유를 빼앗고 제약하는 결과를 빚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회가 그러한 기본적 안전망을 보장하지 못할 때, 이를 메꾸기 위해 부득이 개인의 삶이 그만큼 부조리하게 희생되고 마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제적 불평등과 부조리의 발생은 결국 정치적 자유를 그만큼 빼앗거나 제약한다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 무상의료 운동은 복지국가 운동의 일환으로서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잘 실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김종명 팀장에 따르면, 현재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 사업주 부담금, 국고 지원이 대략 55:30:15 정도로 분담한다. 이를 지렛대로 국민이 대략 6.5조의 보험료를 추가 부담하면 총 14조가량의 재원이 확보되며, 이것을 보장성 확대에 사용할 경우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를 해결할 수 있기에 민간 의료보험 지출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국민들은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 민간 의료보험 지출이라는 세 가지 부담을 떠안고 있는 데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의료행위가 매우 선별적이고 제한적이라 되려 민간 보험사업 자본가들만 배불리는 구조에 가깝다. 따라서 무상의료 운동은 그야말로 '사회연대 반자본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김종명, “보건의료 의제와 투쟁, ‘자본 대 반자본’으로 재편해야” 레디앙 기고 글 참조).

그렇다면 솔직히 한국의 좌파들이 굳이 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여겨진다. 나는 이 무상의료 운동에 현재의 좌파 기본소득론자들도 함께 참여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것은 현물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보편복지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사회적 연대와 합의일 것이다. 이는 보편복지를 향한 국민의 자발적 증세 운동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시에 노인기본소득 역시 시급하게 필요하다. 필자가 이를 무상의료와 동시에 주장하는 데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매우 결정적이다. 또 한편 사회 변혁을 위한 전략적 발판으로 이용해서 박근혜의 지지 기반을 교란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미 박근혜가 공약했던 노령기초연금은 애초 기본소득의 요건에도 맞는 것이어서, 무상급식 논란 때처럼 보수 세력들로부터 빨갱이나 공산주의적 정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여지도 거의 차단된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노인기본소득은 그야말로 사회안전망을 위한 장치가 되는 보편복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시점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노인기본소득' 제안은 '현금 15~17만원 + 3~5만원 상품권 = 20만원'(물론 상품권 주문은 무료 배달 서비스 포함이며, 가능한 시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기에 낮은 액수부터 제안한 것뿐이다)인데, 여기선 금액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액수를 얼마만큼 할 것인가의 문제도 결국은 증세로 인해 늘어난 재원만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현금에다 상품권을 넣고자 하는 이유는 어차피 일정하게 소비되는 생필품은 필요할뿐더러 이를 농수산물 직거래 상품권 혹은 전통시장 상품권과 결부할 경우 전국의 농어민을 살리고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는 동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후에 실시해야 할 '영유아기본소득'에도 대형 마트가 아닌 전통시장의 상품권을 포함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또한 통장에 넣어주는 수령 방법에 대해서도 다소 이견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노인은 이미 신체적으로 갈취를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이기에, 조금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중에 '영유아기본소득' 실시 때도 마찬가지 입장인데, 이 수령 방법에 대해선 기회가 되면 따로 언급해볼 생각이다. 물론 심사나 사회적 낙인 없이 수행되는 수령 방법 말이다. 강화되어야 할 것은 심사가 아니라 안전과 보호다.

어쨌든 노인기본소득제 실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급할 현금 액수가 얼마인가'보다도 '얼마만큼의 증세가 실현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현재 일각에서 수행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사회복지세 운동'을 좀 더 구체화해서 노인기본소득제 실행을 위한 자발적 세금 운동으로 단결하기를 제안하는 바다. 즉, '사회복지세 운동'을 좀 더 구체화한 목록의 목적세로 정해서 '노인기본소득 자발적 증세 운동'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 사회복지세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는 지금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전략으로서의 목적세 운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만일 '노인기본소득 자발적 증세 운동'을 할 경우, 박근혜 정부 및 우리 사회 보수 지지층 세력의 기반을 겨냥해서 이를 뒤흔드는 전략까지도 마련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박근혜는 애초 공약을 바꿔서 국민연금과 연계시켜 차등 심사 지급을 계획하고 있는 데다, 소득연동이 아닌 물가연동으로 바꿈으로써 보편복지라고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증세 없이 복지를 하려다 보니 재원을 마련할 수 없어서, 결국 궁여지책으로 애초의 노인 보편복지 공약을 이렇게 변경해버린 것이다. 복지를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현재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세금=손해’라는 인식부터가 매우 팽배해 있다. 심지어 서점가에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 내는 110가지 방법』(개인편/부동산편/기업편)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책까지 나와 있다. 아마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가 이런 책을 살 것이다. 내야 할 세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아깝게 느껴질 것이니까.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좌파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서 증세 운동을 벌였으면 한다.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을 돕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증세를 위한 자발적 시민운동이 보다 확대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증세 운동'이 있지 않으면 세금에 대한 인식을 깨트리기가 매우 힘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사회복지세 운동 같은 목적세 운동에 사민주의자들이든 기본소득론자들이든 보편복지에 찬성하는 모든 복지운동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발적 증세동맹 복지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세금을 더 내겠다는 목적세 운동 없이는 앞으로 증세 및 조세 개혁에 대한 전망을 갖기가 힘들뿐더러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조세 저항을 극복하기가 매우 요원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러 사회복지 운동가들 및 복지 운동 단체들과 함께 정부를 압박해서 '노인기본소득 자발적 증세 운동'을 이끌어낸다면(재차 강조하지만 요건만 맞다면 명칭을 꼭 ‘노인기본소득’라고 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붙이면 더 좋다), 그야말로 기본소득 운동에서 볼 때도 본격적인 첫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자발적 증세 운동으로 국민을 함께 설득해나가고, 또 한편으로는 정부를 더욱 압박해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민주의자들이든 기본소득론자든 적어도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이들이라면 이 지점이 바로 초석이 될 만한 첫 출발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기본소득론자들은 '건강보험하나로' 같은 무상의료 운동에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겠고, 복지국가론자들은 사회복지세 운동을 '노인기본소득 증세 운동'으로 보다 구체화해서 기본소득론자들과 함께 주장할 필요가 있겠다. 함께할수록 실현 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것이다.

필자는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제가 실제로 실행될 경우 나름대로 사회적 반향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우리나라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현실인지라,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노인들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틔워드린다면 그 체감 효과는 더욱 크게 다가올 것으로 본다. 이미 기본소득에 대한 소득재분배 효과는 기존 사회복지학자들도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김교성,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탐색적 연구”, 『사회복지정책』36권 제2호 ; 백승호, 앞의 글 참조).

그리하여 보편복지를 체험한 사람들 스스로가 기본소득제 담론을 주도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2층 짓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체험한 이들이 결국은 기본소득 운동의 주체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어렵다는 국민적 합의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핵심 정책 의제로도 떠오르도록 깊숙하게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겠다.

어쨌든 이 초두 효과를 근거로 해서 본격적인 세금 신설 및 '영유아기본소득'(0-5세까지)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앞서 말했듯이 '영유아기본소득'의 경우도 통장에 직접 넣어주는 방법은 중간 갈취의 위험 때문에 곤란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금 도입으로 인한 증세가 실현되는 만큼 영유아기본소득에서 다시 또 '청년기본소득'(20-39세)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참고로 '청년기본소득'의 경우 '마이너스 소득세'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강남훈 교수의 말대로 기본소득제의 사촌쯤 된다). 그리고 무상교육을 위해 반값 등록금 실행도 점차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금은 대체로 부자 증세가 되겠지만, 적어도 2층을 짓는 여기서부터는 토지와 금융에 대한 과세를 본격적으로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토지와 금융에 대한 불로소득은 상당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긴다’는 원칙 자체를 중심으로, 흔들림 없는 국민 촉구 운동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증권양도소득세, 토지세, 생태세, 토빈세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재원 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안들,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산출하는 것이 그야말로 가장 큰 핵심이 될 것이다.

혹자는 이 같은 과세를 시행할 경우 국내 투자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갈 위험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수익률 대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볼뿐더러 조세부담률이 우리보다는 훨씬 높은 50%에 육박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그 같은 큰 위험성은 드러나진 않았었다. 예컨대 조세가 국내총생산의 절반 이상에 이르고 노동인구의 75% 이상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도 자본주의 경제가 원활하게 움직이며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반면에 그에 비해 노조가입률이 현저하게 낮고 오히려 현재 '불안정 노동자'―일명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비할 바 없이 훨씬 더 많은 우리나라 현실의 경우는 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력보다는 오히려 사회 안정화로 인한 생산성 창출의 긍정적 영향력이 훨씬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솔직히 박근혜가 말하는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도,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우선 기본적인 먹고사는 일부터 안정이 되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증세 및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빈곤의 비극과 고통, 불안정 노동과 복지 사각지대 문제 그리고 실제 시행으로 체험된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에 대한 초두 효과 경험을 토대로 해서 더 큰 차원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겠다.

이와 함께 정당들 역시 꾸준히 보편복지로서의 기본소득제를 당의 강령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기본소득제에 대한 지지 정당의 집권 작업에도 계속 힘쓸 필요 또한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등에 업고서 되도록 많은 정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만 한다고 본다. 보편복지의 확대는 경제민주주의 실현뿐만 아니라 정치민주주의의 고양과 성숙에 있어서도 매우 결정적인 핵심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너무 가난해서 먹고살기 힘들고 바쁘면 국가 정치에 대해서도 거의 들여다보지 않을뿐더러 공중파 언론과 뉴스를 아무런 비판적 의식 없이 받아들일 여지 또한 높다고 하겠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약자일수록 정작 정치ㆍ경제ㆍ사회를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든 것이다. 부르주아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더더욱 기만하고 희생시키는 가운데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3층 짓기 : 전면 기본소득 실행을 위한 사회복지 지출 및 조세부담률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사실 기본소득론자 강남훈 교수가 2014년 모델로 제안한 현금 30만 원(필자는 현금 20만 원 + 상품권 5만 원 = 25만 원 제안[이 경우 필요 예산은 120~130조 원 정도], 전면 실행의 경우도 시작이 중요하기에 낮은 액수부터를 권한다. 그러다가 증세로 인한 재원이 늘어나면 30만 원 기본소득도 얼마든지 실행해볼 수 있겠다. 재차 강조하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모델은 마지막 3층 짓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3층도 실은 더 큰 맥락의 3층 집을 위한 1층이 될 수도 있기에, 이를 완전무결한 최종 목적지로 설정하기보다는 일종의 중간 목표로서 놓여 있음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이 중간 목표는 기존 OECD 국가들의 평균적인 사회복지 지출 대비와 조세부담률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 대비는 OECD 국가들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데, 이 점은 사회복지 서비스 강화 및 증세를 주장하는 복지국가론자들도 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터라 같이 해볼 만한 '증세 및 복지 동맹'인 것이다.

강남훈 교수는 전면기본소득의 경우에도 북유럽 수준까지도 필요 없고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을 현재에서 10%포인트 정도만 올려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앞서 1층 짓기와 2층 짓기의 효과를 근거로 삼아 계속적으로 끌어 올려야만 할 것이다. 보편복지에 대한 실행 경험은 되돌리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 더욱 희망적인 지점이다.

또한 1층과 2층에서 시작된 보편복지 운동의 정치적 요구들도 지속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집권을 향한 정치적 세력화 역시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증세 및 조세 개혁'을 통한 전면기본소득을 마침내 실현할 수 있겠다. 필자는 우리가 함께 1층 짓기만 잘 한다면 최소한 10년 이내에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보편복지의 결정판이 될 '전면기본소득'에 이를 경우, 기존의 기초수급생활 보장금, 기초노령연금, 보육료 같은 것이 중첩될 수 있는데, 이는 어차피 '전면기본소득'으로 대체되는 것이기에 160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필자가 제안한 '20만 원 현금 + 5만 원 상품권 모델'의 경우는 대략 120~130조 원 예상, 시작이 반이다!).

일괄적으로 유아에서 노인까지 몽땅 다 동일 금액으로 책정해야만 할 절대적 이유 같은 건 없다. 즉, 영유아기(0-5세), 어린이(6-12세), 청소년(13-19세), 청년(20-39세), 중장년(40-65세), 노인(65세 이상) 등 생애 주기별로 금액을 조금씩 달리 책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탄력적 방안 역시 가능할 수 있음도 고려해야만 한다.

전면기본소득을 실행한다고 해도 그 밖의 무상의료, 무상교통, 무상교육 등 다른 사회복지 제도나 복지 서비스를 몽땅 없앤다거나 이를 하나로 통합ㆍ대체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 역시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3층 짓기에서의 중요한 핵심은 보편복지의 인프라를 사회 전반에 전면적으로 정착화하는 데에 있다. 그럼으로써 보편복지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인식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무상'이라는 표현이 ‘공짜’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니, 그냥 국민의료, 국민교통, 국민교육(물론 ‘국민’에 대한 어감을 매우 안 좋게 생각하는 급진 좌파들도 있겠지만) 등의 용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보편복지 제도'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른 사회복지 제도를 통합하려는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으며, 보편적 복지의 강화로서 실행되는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또한 높은 기본소득이 아닌 낮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높은 기본소득은 노동 회피가 매우 극명하게 나타날 위험성 역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는 '복지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기본소득은 오히려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만큼 더 크게 전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본소득의 의미도 말 그대로 '기초소득(basic income)'인 것이지, '충분소득(full/adequate income)'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 사회책임 ‘기초’보장을 언급한 것이지, 사회책임 ‘완전’보장을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몸일을 통해서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인정받고자 하는 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낮은 기본소득 정도에 만족하고 자신의 일을 그만두는 베짱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기본소득 25~30만 원이 매우 적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정도만이라도 팍팍한 생계에 있어 유의미한 숨통과 여가의 틈새를 창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도 유의미한 활력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매달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든 개인에게 25~30만 원이 지급되는 대한민국 사회를! 복지 사각지대를 상징하는 세 모녀 자살 사건들이 어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것은 좀 더 커다란 목표를 위한 작은 시작이라는 점도 덧붙여두고자 한다.

일국적 유형의 복지국가론의 한계를 넘어서 지구적 사민주의와 글로컬 기본소득 논의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자 한다. 다만 '높은 기본소득'을 실시할 여건이 되는 나라라면, 현재 기본소득을 실시하지 못하는 다른 빈곤 국가들에 자신들의 높은 기본소득을 좀 나누어서, '낮은 기본소득'을 다 같이 누릴 수 있게끔 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를 위해 필자는 한국이 17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희망을 두고 있는 사민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다.

<'사회민주주의 기본소득론'은 가능한가? (3)>에서 계속

발제문/미선 정강길
사회민주주의센터 교육국장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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