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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론 찬성 : 청년을 사로잡는 기본소득 (1)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다음 글은 2014년 4월 5일(토) 오후 2~6시에 진행된, <대토론회: 복지국가론 vs 기본소득론> (주최: 사회민주주의센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발표된 백희원 씨의 글입니다. 발표문과 함께 발표 직후 진행된 질의응답 및 토론의 녹취록을 여기에 올립니다 - 편집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개인들과 단체들의 네트워크다. 청'소'년은 0세~30대의 미래 세대를 칭하는 조어로,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경제생활에 진입하게 된 세대, 축적되어가는 생태 및 빈곤 문제를 짊어진 세대, 다양한 상상력을 지녔으나 이를 펼칠 자원이 없는 세대를 가리킨다.

청'소'년이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을 미래를 위한 열쇠로 선택한 이유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기술해보고자 한다. 학술적으로 엄밀한 사용에서 벗어난 단어들이 곳곳에 많이 있을 터인데 미리 양해를 구하며,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
 

1. 청년에게 복지국가보다 기본소득이 매력적인 이유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일자리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일자리 문제는 청년 문제의 뇌관이다.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한국의 청년 일자리 현황은 특히 심각하다. 한편에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의 주축을 맡으며 장시간의 질 낮은 일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경제활동에 진입하기를 유예하며 스펙을 만들거나 경쟁률이 400:1에 육박한다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청년들이 있다.

청년의 입장에서 이는 피치 못할 상황이다. 90년대부터 물가 인상률의 두 배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한 대학 등록금과, 지방 출신 청년들의 발목을 잡는 수도권의 값비싼 임대료는 아직 전문 기술을 익히지 못한 청년들을 협상의 여지 없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덫으로 이끈다. 운 좋게 부모의 지원을 받아 준비 기간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안정적 일자리에 올인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이 야기하는 불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치권에서는 중소기업 투자를 통한 일자리 확대나 청년 창업 프로그램 제안과 같은 주변적인 아이디어들만 내놓는 수준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용 문제를 맞닥뜨린 유럽은 어떨까. 선진 모델로 국내에 곧잘 소개되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중산층 노동자 계급이 국민 다수의 비중을 차지하고, 이들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해서 확보한 재원으로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완전고용에의 지향을 전제로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일자리 정책은 노동연계성이 높다. 이를테면 직업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된 실업수당을 통해 임금 소득이 없는 동안의 생계를 보장하면서 새 일자리 찾기를 돕는 식이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모델이지만 여기에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결함이 있다.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대량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부를 축적하고, 국가가 주도해서 부를 재분배하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 대안으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는 유동적 자본과 초국적 기업 시스템에 의한 노동유연화를 채택함으로써 오늘날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노동 연계 복지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성을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 일례로 독일은 2000년대에 경제위기의 압박으로 비정규 저임금 일자리들과 연계된 복지 정책을 펼쳤고, 이는 지금도 빈곤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과거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함으로써 일자리를 없애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일자리 창출이 요원한 상황에서 결국 실업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책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분배일 것이다. 기본소득은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효과를 가져온다. 생계를 위해 적은 수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임금 노동을 통한 추가 소득의 인센티브는 여전히 존재하므로, 노동시장의 공급이 모자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비로소 협상 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노동시장의 공급 수요 곡선이 적절한 균형점을 새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계를 위한 계산 대신 자신의 삶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일자리를 탐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청년은 비로소 자살을 고민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을 포함한 삶의 꼴에 대한 고려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생태 사회로 향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 화석연료를 통해 전에 없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던 시절은 반세기 전에 끝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발전이 결코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특히 현존하는 세대 중에 가장 먼 미래까지 살아가야 할 청년 세대에게,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면에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지속 가능한 저성장으로 유지되는 생태사회로의 전환은 청년 세대가 직면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생태운동과 결합한 기본소득은 청년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지난 세기 사회주의 국가, 복지국가, 자본주의 국가 모두가 자연에 대해 수탈의 자세를 취했고, 그 결과 우리는 전 지구적 협력이 요구되는 생태 문제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문제들을 해소하고 소화시킬 수 있는 다른 형태의 국가 혹은 사회 시스템의 개발이야말로 이번 세기에 해결해야만 할 숙제일 것이다.

기본소득은 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알래스카의 기본소득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시행되는 기본소득제는 석유 자원에서 얻은 이익을 주민들에게 지급한다. 천연자원을 배제적인 이익 창출의 도구로 여기지 않고 공유자원으로 여겨, 공동체가 함께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석유뿐 아니라 다른 자연자원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태사회에서 자원 부족 문제 해결의 핵심은 생산이 아니라 관리다. 조건 없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에 걸맞는 자원 재분배 도구일까? 사회보험은 소득 수준에 따라 보험비의 납부와 지급액에 차등이 있고, 이것이 더 많은 소득에 대한 유인이 되는 데 반해, 기본소득은 소득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므로 이와 같은 위계를 없애고, 임금 노동을 생계로부터 분리시켜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도록 유인한다. 사람들이 생산(노동)을 덜 하는 동시에 추가 소득을 얻음으로써, 삶의 질은 낮아지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잘 알려진 것처럼 기본소득은 다른 복지 정책에 비해 행정비용을 크게 감소시킨다.

물론 이와 같은 생태적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재원 조달부터 지급까지, 생태사회를 염두에 둔 다양한 세팅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생태 문제와 기본소득을 결합한 생태 기본소득 모델은 생태세를 책정해 기본소득의 재원 및 에너지 문제 해결 비용으로 사용한다.

셋째,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해 자율적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언급하지만 사실 기본소득이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여기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는 것.

청년들의 답답한 현황을 좀 더 이야기해야겠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수식처럼 오늘날의 청년들은 뛰어나다. 한국의 90년대는 문화의 시대였다. 케이블방송이 들어오고, 일본 문화가 개방되고, 음악 검열이 사라지고, 영화, 게임, 아이돌 산업을 필두로 한 한류까지 90년대에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결정적이었다. 대중문화의 확장과 함께 서브컬처와 독립문화의 맹아도 싹텄다. 오늘날 한국의 청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사교육 훈련과 이 다양한 문화적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세대다. 강한 생존력과 빠른 학습 능력, 다양한 콘텐츠! 바야흐로 창조경제에 걸맞는 고부가가치 인력들인 것이다. 야근과 저임금을 원동력으로 획득한 IT 강국 한국이라는 칭호가 씁쓸하게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이 잠재된 능력들이 발휘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음악, 요리, 춤, 별별 영역의 재능 있는 청년들은 최후의 1인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놀라움을 선사하며 소진되고, 스펙 좋은 대학생들은 수차례에 걸친 테스트, 그룹 면접, 합숙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으로 이루어진 대기업 입사 경쟁에 뛰어든다. 그런데 작금의 시스템에서 과연 이들의 능력이 얼마나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 불안과 무력감, 오랜 경쟁 관계로 인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기계발 욕망은 번번이 좌절되곤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회의감을 느끼는 청년들이 대다수다.

기본소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이 제공된다면 청년들은 제도권의 허락 없이도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다양한 공간들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존보다 높은 차원의 성취를 이루고자 노력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인을 나태하게 만들기보다 사회적 책임을 내재화해서, 상품화된 노동과는 다른 가치로 사회에 기여하게 만들 것이다.

한편 청년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소비적인 문화를 삶의 양식 깊이 학습한 세대이기도 하다. 24시간 편의점이 주는 안정감과 대형 쇼핑몰의 편리함,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매주 전 세계로 값싸게 공급되는 SPA 패션 트렌드의 신속함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앞서 생태운동적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언급하며 기본소득이 생산을 축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소비가 줄지 않으면 생태사회는 도래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현재와 같은 과잉 소비의 흐름에 흡수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청년 세대는 과연 이 ‘값싼 편리함’이라는 삶의 질을 포기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청년 세대를 설득할 만한 삶의 양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삶의 양식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낮은 가격이나 편리함과는 다른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이를테면 2년 쓰면 갖다 버려야 하는 조립식 합판 가구 대신, 시간을 들이더라도 오래도록 쓸 수 있는 가구를 직접 만들거나 주문해보는 시도 같은 것 말이다. 다행히 지금 여기에 발붙인 채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청년들이 이미 출현하고 있다. 도시에서 농업 교육을 실천하는 <씨앗들협동조합>,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이 자신의 배움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시작해 지자체와의 협업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자급 기술로 강정, 밀양 등 다양한 투쟁 현장에 연대하는 <물체주머니>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면서도, 자발적으로 대학, 마을, 도시에 생산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위한 콘텐츠들을 제공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위와 같은 활동들을 크게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 노동 외의 다른 사회적 활동들, 특히 자활노동, 정치적 활동, 문화 활동 등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도를 높이며, 시민사회와 사회적 경제를 확장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공동체의 발전과 실천적인 삶은 생태운동의 핵심이다. 생산량을 줄이는 대신 사회적 경제를 통해 공유자원을 늘려서 새로운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들이 활발히 병행될 때만이, 생태사회와 자율적 삶의 필요조건이었던 기본소득을 충분조건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여성을 비롯해 청소년, 성소수자 등 다양한 주체들의 시민권을 강화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여성들이 도맡아 해온 돌봄노동과 같은 ‘그림자노동’의 가치를 가시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가부장적인 관점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불러올 위험이 있고 생계가 해결됨으로써 여성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할 유인이 사라져, 성별 노동분업을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근본적으로 개인들의 '차이'를 해치지 않는 정책이다. 이를테면 여성 경제활동 인구 비율이 20대에는 남성보다 높은데 30대에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아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육 서비스' 정책을 시행한다면,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인식을 강화하게 된다. 반면 보편적으로 개별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선택과 책임을 모두 개인의 몫으로 남겨둔다.

<기본소득론 찬성 : 청년을 사로잡는 기본소득 (2)>에서 계속

글/백희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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