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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론 찬성: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기본소득 (2)기본소득의 사상과 역사

<기본소득론 찬성: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기본소득 (1)>에 이어서

5. 베짱이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나?

아마도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는 베짱이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일 것이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롤스(John Rawls)는, 캘리포니아의 말리부 해변에서 하루 종일 서핑을 하는 서퍼는 다른 사람이 노동하는 시간 동안 여가를 즐기는 것이므로 보조금을 지급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판 빠레이스는 롤스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고 실험을 했다. 일에 미친 자(Crazy)와 게으른 자(Lazy)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다 태어나면서 똑같은 크기의 땅을 받았다. 미친 자는 자기 땅에서 하루 종일 경작을 해서 많은 수확을 얻었지만 땅이 모자라서 늘 불만족이다. 게으른 자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두 사람 모두 더 행복해질 수 없을까? 미친 자가 게으른 자로부터 땅을 빌리면 된다. 미친 자는 경작할 땅이 많아져서 좋고, 게으른 자는 일을 안 해도 되어서 좋다.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 미친 자가 만든 소득의 일부를 떼어서 게으른 자에게 주는 것이 미친 자에게도 더 좋은 일이다. 베짱이가 개미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베짱이와 개미가 공생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본소득의 근거이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롬(Erich Fromm)은 「보장소득의 심리학적 측면」(The Psychological Aspects of Guaranteed Income)이라는 글에서 인간의 본성에 기초해서 기본소득을 옹호했다. 인간의 본성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인간은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고통을 느낀다. 아동의 발달과 질병의 심리학에서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한두 달은 놀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할 일을 달라고 구걸하게 된다. 기본소득을 주면 사람들은 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것이다.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베짱이를 찾기 매우 힘들다. 비경제활동 인구로 분류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언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비경제활동 인구 중에서 노인과 아동은 베짱이라고 볼 수 없다. 전업주부도 베짱이가 아니다. 우리는 어머니들이 우리를 위해서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홍대 앞에서 밤거리를 헤매는 고등학생도 베짱이라고 할 수 없다. 사춘기를 막 지난 어린 학생이지 않은가? 공부를 게을리하는 대학생도 베짱이가 아니다.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취업재수생도 베짱이가 아니다. 직업이 없어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실업자도 베짱이가 아니다. 직장에서 해고된 뒤 동네 가게를 열었지만 장사가 안 되어 한숨을 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베짱이가 아니다. 도대체 누가 베짱이인가?

힘들게 찾아보니, 얼마 되지는 않지만 세 가지 부류의 베짱이가 발견된다.
하나는 노숙자이다. 이들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희망을 버린 채 죽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노숙자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리기보다는 적은 금액이라도 지원해서 희망을 되찾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본소득은 노숙자 베짱이를 없애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사회적 실험의 결과는 희망을 잃은 베짱이들에게 약간의 소득만 지원하더라도 개미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둘째는 진짜 부자 베짱이. 예를 들어 재벌의 자녀로서 놀고먹기로 작정한 사람. 이런 베짱이는 기본소득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주어서 베짱이로 바뀌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재벌의 자녀들이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가 되려고 해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경영권을 물려받으려고 탈세를 하고, 경영 수업을 받는다고 동네 가게들을 다 죽이고 있다. 차라리 이런 사람들은 베짱이로 살아가도록 강제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셋째는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이 선별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 이들은 일을 하면 선별복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무조건 베짱이가 될 수밖에 없다. 선별복지 제도가 멀쩡한 개미를 베짱이로 만들고 있다. 기본소득은 전혀 다르다. 일을 하더라도 기본소득이 그대로 지급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선별복지 제도하에서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이것이 기본소득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러셀은 모든 사람에게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이 무조건 지급되고, 그 이상의 소득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대안 사회를 그렸다. 여기서 사적인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개미가 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베짱이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금노동만을 사회적인 노동으로 인정한다. 임금노동이 아닌 노동을 하는 사람은 베짱이이다. 주부의 가사 노동, 활동가의 봉사 노동, 예술가의 창작 노동은 모두 자본에 의해서 고용되지 않는 한 베짱이의 노래로 간주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수많은 노동들이 베짱이의 노동으로 간주된다. 이에 반해서 과거의 국가사회주의에서는 누가 베짱이이고 누가 개미인지 국가가 결정했다. 그러다가 국가권력이 부패하고 사람들의 창의성이 사라지면서 체제 자체가 무너져버렸다.

러셀이 구상한 대안 사회에서는 누구나 생필품에 해당되는 만큼의 노동을 하고 있다고 무조건 인정한다. 사람을 일단 믿고,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라고 자유를 주는 것이다.
 

6. 기본소득을 지급할 돈이 어디 있나?

알래스카에서는 석유가 나오니까 적은 기본소득이라도 지급 가능하지만, 우리는 아무 자원도 없어서 기본소득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세를 통해서 기본소득을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일단 3인 가족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받는 금액이 90만 원이 조금 넘으므로, 1인당 3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고 가정하자. 1인당 30만 원이면 1년에 360만 원이고, 5,000만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려면 1년에 180조 원이 필요하다. 실제로는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노령연금, 보육료 지원 등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160조 원이면 충분할 것이다. 어마어마한 돈 같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총조세부담률은 30%가 안 되는데, 계산하기 좋게 25%라고 가정하자. 북유럽 국가들의 총조세부담률은 50%에 가깝다. 우리나라가 현재 25%인 총조세부담률을 북유럽 수준인 50%로 25%포인트만큼 올린다면 얼마만큼의 재정수입이 확보될까? 2014년 국민소득은 1,4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의 25%는 350조 원이다. 기본소득 180조 원을 지급하고서 나서도 다른 용도, 예를 들어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에 쓸 수 있는 충분한 돈이 남는 규모이다. 세율이 50%이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에서 매우 경쟁력이 높은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북유럽 수준까지도 필요 없고, 조세부담률을 지금보다 10%포인트 정도 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마지막 질문에 도달했다. 기본소득을 부자들에게까지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베짱이에게도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낫다고 하자.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현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본소득을 위해서 조세부담률을 10%포인트 올리는 것에 찬성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는 소수의 땅 부자들로부터 3조 원 정도를 종합부동산세로 걷었다. 그리고 걷은 수입은 지방정부로 내려보내 복지비로 쓰도록 했다. 종부세로 복지를 맛보임으로써 종부세를 없애기 힘들게 만들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세금 폭탄이라는 공세를 받고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당시 지방정부는 종부세 수입을 교부받아서 노숙자들의 무상급식 같은 사업들을 벌였다.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떠돌았던 것이 생각난다. 어떤 보수 일간지 기자가 무상급식을 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노숙자에게 물어본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 합니다. 매우 힘듭니다.” “왜 힘듭니까?” “그놈의 종부세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져서 제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먹는 점심값이 종부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노숙자는 종부세를 원망하고 있었다. 종부세로 인해서 정권을 빼앗긴 뒤로 야당 정치인들이 여당 정치인보다 세금 올리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180조 원의 세금을 더 걷는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기본소득 정신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신기한 방식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2009년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보편적 무상급식을 공약하고 당선이 되었다. 이건희 손자에게 왜 무상급식을 하느냐고 격렬한 정치 논쟁이 전개되었다. 당시 경기도 의회를 지배했던 한나라당은 무상급식 예산을 거부했고, 하위 30%의 초등학생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할 수 있는 예산을 배정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그 예산을 가지고 하위 30%가 아니라, 1, 2, 3, 4학년을 제외하고 5, 6학년 학생 전부에게, 부자 아이들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이것은 큰 모험이었다. 1, 2, 3, 4학년 학부모들이 누구에게 반발했을까?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학부모들은 김상곤 교육감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심판했다. 왜 부자에게 주느냐고 따진 것이 아니라, 왜 우리에게 안 주느냐고 따졌다. 한나라당은 경기도 의회 의석의 거의 전부를 잃었고 무상급식을 거부했던 의원들은 모두 떨어졌다. 그 후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반대하다가 서울시장직을 잃게 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이건희를 포함해서 모든 노인들에게 한 달에 20만 원씩의 기초연금을 무조건 지급하겠다고 과감하게 공약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기초연금은 무조건성, 개별성, 보편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므로 노인 기본소득 공약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본소득을 공약하고 당선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당선된 뒤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을 기본소득이 아닌 형태로 후퇴시켰다.

이제 2017년 선거에서 여당이나 야당 대선 후보들은 어떤 복지 공약을 가지고 나올까? 아마도 노인과 아동에 대해서는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하는 후보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장년만 남게 된다. 우리 정치에서 기본소득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이렇게 빨리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을 공약한 최초의 대통령이자, 기본소득 공약을 안 지킨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앞서 종부세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종부세로 걷은 3조 원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비로 집중적으로 사용한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이었을까? 당시 모든 학교 학생들의 급식비를 합치면 3조 원 정도였다. 만약 종부세로 걷은 돈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했다면 세금 폭탄이라고 공격할 수 있었을까? 정권이 바뀌더라도 어느 누구도 종부세를 없애려는 시도를 못 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가난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되고, 적은 금액이라도 부자들과 나누어 갖는 것이 가난한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다.
 

2020년 우리나라 헌법 제100조를 살펴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기본소득에 대한 권리가 있다. 국가는 기본소득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이런 나라를 꿈꾸자.

우리는 모두 자식들에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해주고 싶어 한다. 사교육을 많이 시켜 서울대에 보내면 좋을까? 돈을 많이 벌어서 한 50억 원쯤 물려주면 좋을까? 요즈음에는 서울대를 나와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50억 원을 물려준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탕진하거나 사업하다 빚을 지고 감옥에 갈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극히 소수의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을 위해서 다 같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되기만 하면 자식 걱정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다. 얼굴이 못생겨도, 머리가 모자라도, 몸이 약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불안하고, 억울하고, 고단한 나라를 대물림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안전하고, 공평하고, 행복한 나라를 물려주자. 우리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나라이다.

 
* 다음은 강남훈 교수의 발제 후, 각 패널들과의 질의응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

 

   
▲ 사진 설명 : 패널들의 질문 듣고있는 강남훈 교수

 

패널 정승일 : 강남훈 발표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 버트런트 러셀, 마르크스, 생시몽 이런 사상가들이 등장하는 논의를 한국의 진보세력은 거의 하지 않는것 같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이러한 세계의 역사적인 좌파 사상의 흐름을 가져와서 논의해야 한다.

강남훈 교수의 발제 핵심은 선별적 소득보장과 보편적 소득보장에 관한 이야기다. 기본소득론을 이야기하는 분들이나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원리가 같다. 이렇게 간명하게 정리해주셔서 (강남훈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발제문 중 베짱이에 관한 내용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이 이야기에서는 대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같은 땅을 갖는다고 전제돼 있는데 사실 땅한평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하자면 태생부터 자산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 대부분이다. 재산이 넉넉한 부모로부터 그 재산을 물려받아 태어날 때부터 자산이 있는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베짱이들이다. 그런 가정에서 넉넉하게 태어난 아이들이 음악, 미술 등의 예술을 많이 한다.
이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사고실험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조금 더 토론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패널 정강길 : 발제문을 보면, 기본소득 위해서는 북유럽 수준까지는 갈 필요도 없이 지금보다 조세율을 10% 올리면 된다고 하는데, 그 10%를 어떻게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패널 백희원 : 저는 많은 부분에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발제자 강남훈 : 사고실험에 대해서 지금 당장은 좋은 답변을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처음부터 기본적인 자산 없이 태어나는 상태, 그런 상태가 본래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토지는 공유돼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배분되는 것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은 답변은 더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다.

조세율을 10% 올리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같이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기본소득을 위해 10%정도를 올리겠다는 정치인이 나오고, 그 정치인이 그에 관한 공약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정치인이 집권을 해야할 것이다.

증세를 통해서 기본소득을 실현하겠다는 정치인이 한국사회에서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2012년 대선에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말하는 대통령 후보까지는 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소득을 보장할 필요는 커져가고, 그것을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 기본소득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을 실현 하겠다고 하는 정치인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기대한다.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들이 더 많이 인식하고 찬성하면 기본소득을 공약하는 정치인이 등장 할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과 지지다.

글/강남훈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리/공은비 기자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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