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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론 찬성: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기본소득 (1)기본소득의 사상과 역사

 

다음 글은 2014년 4월 5일(토) 오후 2~6시에 진행된, <대토론회: 복지국가론 vs 기본소득론> (주최: 사회민주주의센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발표된 강남훈 교수의 글입니다. 발표문과 함께 발표 직후 진행된 질의응답 및 토론의 녹취록을 여기에 올립니다 - 편집자

 

기본소득은 정말 간단한 사상이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일하든 공부하든,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편성(부자에게도 준다), 개별성(개인별로 준다), 무조건성(노동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기본소득이라고 본다. 인구 전체가 아니라 노인이나 아동 등 일부 집단에만 지급되는 소득도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부분적인 기본소득으로 본다.
 

1. 기본소득의 사상과 역사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복지가 뒤떨어진 나라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세계에서 기본소득 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였다.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과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주장했다(두 사람 모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너스 소득세란, 최저생계비를 기준소득으로 정해 놓고, 소득이 기준소득을 넘어서면 초과분에 비례해서 세금을 내지만, 소득이 기준소득에 미달하면 미달분에 비례해서 보조금을 지급받는 제도이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기본소득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사촌쯤 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책을 합쳐서 보장소득 정책이라고 부른다. 보장소득 정책 내에서 기본소득이 급진적 형태라면, 마이너스 소득세는 온건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갤브레이스(Kenneth Galbratih), 제임스 토빈(James Tobin, 유명한 토빈세를 주장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도 마이너스 소득세에 동조하면서, 마이너스 소득세는 미국의 보장소득 운동 내에서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당시 기본소득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는 씨오볼드(Robert Theobald)였다.

미국에서 보장소득 운동에 가장 앞장선 운동가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였다. 킹의 첫 번째 행진은 흑인들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행진의 결과로 흑인들은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킹은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식당에 들어갈 권리를 획득했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인들에게 식당에 갈 돈이 없으면 이런 권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빈자들의 행진(Poor People’s Campaign)'이라고 이름 붙인 두 번째 행진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는 행진을 시작하지 못하고 1968년 암살되었다.

빈자들의 행진은 완전고용, 보장소득, 싼 임대주택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중에서 킹이 가장 강조한 것은 보장소득이었다. 킹은 완전고용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보장소득이라도 보장하라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다음은 「여기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혼란인가 공동체인가」라는 연설문의 일부이다.
 

우리는 국가를 보장연간소득으로 이끌어갈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금세기 초였다면 이 제안은 책임과 자발성을 파괴한다고 조롱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경제적 상태가 개인의 능력과 재능의 척도로 간주되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우리 경제의 시장에서의 작동 오류와 만연한 차별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그들의 의지와 반대로 항상적으로 또는 빈번하게 실업 상태에 빠뜨려 눈멀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가난한 사람이 열등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에 해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또한 경제가 아무리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확장해도 가난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1년에 200억 달러를 가지고 보장연간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략) 부정의하고 사악한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는 데 350억 달러를 쓰는 나라라면, 그리고 사람을 달에 보내는 데 200억 달러를 쓰는 나라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구 위에서 그들의 다리로 서게 하는 데 수백억 달러를 쓸 수 있는 것이다(Martin Luther King, "Where Do We Go From Here: Chaos or Community?", 1967).
 

킹의 기본소득 운동은 미국 학자들과 정치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킹이 암살된 지 한 달 뒤에 새뮤얼슨(Paul Samuelson,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비롯한 미국의 경제학자들 1,000여 명이 보장소득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각종 정부 기관들이 보장소득 정책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1969년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가족보조 프로그램(FAP)을 발의했다. 이것은 가족 단위의 마이너스 소득세라고 할 수 있는데, 금액이 적었고 노동 요구가 들어갔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소득이 없으면 연간 $1600을 지급받는다. 소득이 생기면 소득의 50%만큼 지급액이 감소한다.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 및 미취학 아동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노동을 하거나 직업 훈련을 받아야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안에 대해 남부 출신 등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은 금액이 너무 많다고 반대했다. 노는 데 돈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너무 적다고 비판했고, 노동 조건을 붙이는 것에 반대했다. 이 법안은 1970년 4월 15일 하원을 통과했지만, 1970년 11월 20일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1972년 닉슨은 FAP 수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이 수정안도 하원에서는 통과되었지만, 상원에서 10표 차로 부결되었다. 미국을 유럽 수준의 복지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보장소득 법안은 이렇게 해서 정치적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968년부터 보장소득 정책으로 인해서 노동 유인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대규모 사회적 실험을 실시했다. 뉴저지에서는 1,357가구를 대상으로 3년 동안, 농촌 지역에서는 809가구를 대상으로 3년 동안, 시애틀-덴버에서는 809가구를 대상으로 최장 20년 동안, 게리에서는 1,800가구를 대상으로 3년 동안, 매니토바(캐나다)에서는 1,300가구를 대상으로 3년 동안 실험이 진행되었다. 여러 계량경제학자들이 실험에서 산출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에서 노동 감소 효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을 중단한 경우는 없었다. 노동 시간이 줄어든 것도 남자는 해고 대비 교육 훈련이 증가해서, 여자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당시에는 이것을 일을 중단한 것으로 해석했다. 학교 출석 증가, 주택 소유 증가, 영양 개선 등의 바람직한 결과는 무시되었고, 시장만능주의로 급속하게 빠져들게 되었다.
 

3.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

미국에서 보장소득 운동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알래스카 주에서는 해먼드(Jay Hammond) 주지사에 의해서 기본소득이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
알래스카는 1959년 주 자격을 얻었고, 주 헌법에서 주의 자원은 주민의 소유로 규정되었다. 1967년 알래스카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해먼드는 1974년부터 주지사에 2차례 당선되었다. 그는 천연자원(특히 석유)의 채취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을 기금으로 만들어서 투자 수익만 소비하자고 제안했다. 1976년 주 헌법을 수정해서 천연자원 로열티의 25%를 기금으로 조성하기로 했고, 1980년에는 50%로 늘어났다.
해먼드는 처음에는 알래스카 영구기금의 수익을 알래스카에 거주한 기간에 비례해서(거주 기간 1년마다 1인당 50달러) 주민들에게 분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이 연방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자, 1 회계연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들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배당은 1982년 1,000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가장 많은 금액은 2008년의 3,269달러였다.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은 미국 기준으로 보면 아주 적은 금액이다.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수준이 되려면 4배 내지 9배 정도로 증가해야 한다.(알래스카는 석유가 발견되자 소득세와 판매세를 없앴는데, 만약 이런 세금들을 없애지 않았다면 기초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기금 배당은 커다란 효과를 낳았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이다. 2008년 미국의 지니계수를 보면 워싱턴 DC가 0.540이었고 뉴욕이 0.503이었는데, 알래스카는 0.403이었다. 2012년 워싱턴 DC의 빈곤율은 20.7%인 데 반해서 알래스카는 10.0%였다. 알래스카는 1990년과 2000년대의 시장만능주의 광풍 속에서도 불평등이 감소한 유일한 주였다.
사람들은 영구기금 배당이 시작되기 전에는 논쟁에 소극적이었지만, 일단 분배되기 시작하자 적극적인 지지자로 변했다. 1999년 영구기금 배당을 하지 말고 주정부 예산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에 대한 총투표에서 84% 주민이 반대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승리 후 스미스(Vernon Smith, 노벨경제학상 수상)는 이라크에서 알래스카처럼 영구기금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해먼드는 아래에 인용한 스미스의 글을 들어 이라크에 기본소득을 도입하라고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에게 충고했지만, 부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공공자원은 민중에게 직접적으로 귀속하고, 공공이라는 명분하에 정부가 중간적으로 소유하지 않고서도 개인의 더 나은 편익과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관리될 수 있다는 혁명적 원리를 포괄하는 경제 체제를 만들 때가 되었고, 그 장소가 바로 이라크이다.(V. Smith, “The Iraqi People's Fund”, Wall Street Journal, 2003. 12. 22)

 

4. 부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난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는 똑같은 정책이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소득을 보조해주는 선별복지에 찬성한다면 기본소득에도 찬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두 정책은 정보가 완전한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똑같은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표-1] 선별소득보장과 기본소득

 


[표-1]에는 선별소득보장과 기본소득의 효과가 각각 비교되어 있다. 모두 5계층이 있다. 각 계층의 시장소득은 0원, 100원, 150원 등이다. 보조금은 선별소득보장의 경우에는 1계층 50원, 2계층 25원, 3계층 12.5원 4계층과 5계층은 0원이다. 기본소득의 경우에는 모든 계층이 50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선별소득보장 하에서 보조금 총액은 87.5원이므로 이만큼의 조세를 걷어야 한다. 여기서는 4계층에서 12.5원을 걷고 5계층에서 75원을 걷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순수혜란 보조금에서 조세를 뺀 금액이다.

기본소득의 경우에는 보조금 총액이 250원이 되므로 그만큼의 조세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계층에 따라 0원, 25원, 37.5원, 62.5원, 125원을 걷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순수혜는 보조금에서 조세를 뺀 금액이다. 선별소득보장과 기본소득의 순수혜를 비교해보면 두 가지 정책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분배규모란 순수혜 금액 중에서 양수값의 합계(또는 음수값의 합계)로 측정된다. 재분배규모만큼 부자에게서 가난한 사람에게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진다. 재분배 규모도 두 정책이 동일하다. 선별소득보장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소득에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분석은 정보가 완전한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정보가 불완전한 경우에는 많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첫째 행정비용을 생각해 보자. 선별소득 보장은 조세를 걷는 행정비용과 보조금을 주는 행정비용이 들어간다. 이에 반해서 기본소득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정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선별소득보장은 순서가 뒤바뀌거나 자격이 있는데도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단점도 있다. 재분배규모는 동일하지만 명목상의 조세규모(또는 보조금 규모)가 훨씬 크다. 따라서 반대파들이 세금 폭탄과 같은 말로써 선동을 할 위험이 있다. 여기서 선동이라는 표현은 똑같은 재분배규모를 가진 정책 중에서 하나는 반대하고 다른 하나는 찬성하는 비합리적 행태를 가리킨다. 기본소득은 선별소득보장과 부담은 똑같으면서도 행정비용이 적게 들고, 누락되거나 뒤바뀌는 경우가 없으며, 낙인 효과가 없지만, 선동에 취약할 수 있다.
부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동태적으로 보면 부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가난한 사람에게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의 표를 살펴보자.

 

   
▲ [표-2] 현재상태가 기본소득일 때 보조금 인상

 

[표-2]에는 기본소득 50원인 현재 상태와 기본소득을 40원으로 낮추는 경우를 비교해놓았다. 여기서 추가 효과란 현재 상태의 순수혜와 기본소득을 감소시킬 때의 순수혜를 비교한 것이다. 이 표로부터 현재 상태가 기본소득일 때에는 기본소득을 감소시키는 정책으로 3개의 계층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본소득은 일단 도입되면 금액을 줄이기 어렵다.

반면에 현재 상태가 선별소득보장일 때를 살펴보자. [표-3]에는 1계층에게만 50원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 보조금을 40원으로 낮추는 정책의 효과가 나와 있다. 1계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득을 보게 된다. 즉 선별소득보장 제도하에서는 금액을 늘리기 어렵다.

 

   
▲ [표-3] 현재상태가 선별소득보장일 때 보조금 인하

 


이러한 관계를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 <재분배의 역설>이다. <재분배의 역설>이란 가난한 계층에게 선별적으로 복지를 시행할수록 장기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받는 금액이 줄어들고, 중산층을 포함하여 보편적으로 복지를 시행할수록 가난한 사람이 받는 금액이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Walter Korpi and Joakim Palme, 1998).

재분배의 역설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중산층을 포함한 보편 복지를 시행하면 중산층이 증세에 찬성하여 복지규모가 늘어나고, 선별 복지를 시행하면 중산층이 증세에 반대하여 복지규모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부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을 것이다. 부자들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에 가난한 사람이 더 이득을 볼 수 있다.

<기본소득론 찬성: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기본소득 (2)>에서 계속

글/강남훈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리/공은비 기자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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