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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ㆍ환경ㆍ사회 성과(TBL)를 동시에 추구하는 삼발이경영 (1)

 

국가의 지속가능성 가운데 경제요인에 주목한다면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재성장률만큼의 성장은 경제에 무리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격차를 고착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나라가 있는데 잠재성장률이 각각 3%, 4%라고 합시다.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하면 두 나라 사이에는 ‘지속가능한’ 경제력 격차가 생길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더 벌어지겠지요. 말하자면 너무 큰 격차가 생겨 이른 바 ‘사다리’를 걷어차기는커녕 그 사이에 ‘사다리’를 놓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잠재성장률이 3%인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답은 간단합니다.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하면서 잠재성장률 자체를 제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앞서 언급한 대로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하죠. 경제체질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지금 대한민국과 같은 상황이라면 출산정책을 들여다봐야 하겠지요. 현재와 같은 저출산 추세에서는 장차 노동력 부족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동남아나 아니면 언어장벽이 없는 중국 동북3성에서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 방법입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수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광산이 있고, 채굴기계가 있지만 석탄 뒤집어쓰고 일할 노동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된 셈입니다. 만일 많은 가정에서 마음 놓고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결됐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출산율은 사회에 관련해 탄광 속의 카나리아로 비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자본을 확충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일본 자금을 끌어들였고, 아무런 명분 없는 제국주의 전쟁인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피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돈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신장 팔아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찢어지게 가난한 청년이었습니다. 과거 우리의 가난이 베트남인들로부터 그때의 용병짓을 용서받을 합당한 이유가 될까요. 이른바 최초의, 원시 자본축적단계를 거치지 않은 제3세계 신생국가의 경제발전전략은 무대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력적으로라도 원시적 축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가난’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 때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의 이면은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희생하자”입니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우리’가 아니었다는 데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갈등이 배태됩니다.)

기술혁신이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는 데 노동과 자본 외에 ‘총요소생산성’이란 것이 기여합니다. 총요소생산성의 가운데 대표적인 항목이 기술혁신입니다. 예를 들어 100미터 달리기에서 앉아서 스타트하는 혁신은 주행능력 자체를 끌어올린 것은 아니지만 성과, 즉 기록경신을 가능케 했습니다. 혁신은 다양하게 때로 쉽게 접근될 수 있습니다.

기술혁신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유효성은 제한적이라는 반론이 있습니다. 금융기법 가운데 ‘차익거래’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보등의 격차로 예컨대 뉴욕시장보다 싱가포르시장에서 특정 금융상품이 일시적으로 더 쌀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사서 뉴욕에 팔면 그 차이만큼 이익을 챙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차이가 빨리 해소된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히타이트 문명이 철기문명을 앞세워 근동의 패자(覇者)가 됐지만 오래지 않아 철기라는 혁신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이 됐습니다. ‘혁신 차익’의 소멸입니다. 혁신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역사, 특히 경제 산업의 역사에서는 최초의 혁신자보다 혁신을 수용한 카피캣들이 과실을 가져간 사례가 허다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카피캣은 문익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의 혁신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문익점이 붓두껍에 씨앗을 몇 개 숨겨 들어온 뒤로 중국의 혁신우위는 소멸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혁신만으로는 항구적 우위를 지켜낼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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