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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가치와 비재무가치의 동시 추구 (2)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기업을 얘기하려면 이래저래 삼성을 피해나갈 수 없는데, 어쨌든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 이건희 회장이 “(10년 전에 삼성이) 구멍가게에 불과했는데 (지금 세계 정상급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언제 또 구멍가게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걱정한 게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걱정은 좋은 걱정입니다. ‘구멍가게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걱정은 지금은 구멍가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직 세계 정상권과 거리가 멀다”는 걱정보다는 ‘떨어질까’하는 걱정이 좋습니다. 1등이 하는 걱정입니다.

삼성의 대표기업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석권하면서 다른 인접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사업 분야들 사이에 최고 시너지를 발휘해 지금의 모습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반도체, LCD 등을 생산하는 산업을 장치산업이라고 하는데 삼성전자가 대표적입니다.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사업을 시작했지만 기업의 명운을 걸고 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1983년 2월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도쿄(東京)선언’부터입니다. 당시 반도체 강국인 일본에서는 이 회장의 반도체사업 본격화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후 역사가 보여주듯 일본측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삼성이 오히려 일본 기업들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삼성전자의 성공담에는 여러 분석이 가해집니다. 지금은 약간 고루하다는 느낌을 줄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참신한 인재인 진대제 황창규 등 일류 기술자들이 애국주의로 무장해 삼성에 가세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무조건 성공하는 아이템이 아마 ‘극일(克日)’일 것입니다. “일본한테는 못 진다”는 알 듯 말 듯 한 신조(信條)에 동참한 당시 전도유망한 젊은 기술자들이 삼성에서 뜻을 모은 것입니다.

삼성신화에서 흔히 ‘지배구조’라고 번역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성 거버넌스의 핵심은 재벌과 재벌총수로 요약됩니다. 다른 재벌그룹들도 비슷한 거버넌스를 갖고 있지만 결과론에 입각해 해석하면 삼성은 어쨌든 달랐습니다. 삼성이 다르다는 의미는 삼성과 효성이 동업자로 함께 출발했다는 데서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함께 출발했지만 지금의 삼성과 효성을 같은 반열에 두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같은 재벌이라면 결국 ‘큰 차이’의 이유는 총수 부문에서 생각할 여지가 있겠습니다. 왜 한 곳은 여전히 고만고만한 기업으로 남아있는가 하면 다른 쪽은 세계 정상급 기업으로 부상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삼성에 대한 사회 저변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이병철 이건희 부자(父子) 회장의 돌파력과 투자결정이 압축성장의 핵심 요인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불황기획을 잘했습니다. 불황기획이야 말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불황일 땐 기본적으로 움츠리는 게 모든 기업들의 속성입니다. 삼성은 반대로 불황 때 공격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경쟁자들을 압도한 큰 이유입니다. 물론 선두권의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따라잡은 이후에 ‘불황기획’을 잘 하지 않았다면 압도적인 1등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평소에 거리를 벌려 놓은 뒤 상대가 힘들 때 그 거리를 더 벌려버린 것이지요. 호황조짐이 보여 일본 기업들이 투자를 재개해 삼성전자를 따라잡으려고 하면 이미 삼성은 저 멀리 달아난 뒤였습니다. (맑은 날에 우산을 준비하듯 비가 올 때 우산을 쓰는 게 상식이며, 불황일 때 움츠리는 게 사실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삼양사는 과거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결코 삼성에 밀리지 않았지만 현재 위치는 삼성과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부터 무리수일 수 있고, ‘불황기획’은 무모한 베팅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지속가능경영 관점에서 재벌식 의사결정은 상당히 곤혹스런 논쟁거리를 제공합니다.)

삼성이기에 가능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삼성의 거버넌스 때문이었죠. 총수 개인이 결단하고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의사결정과 경영의 구조가 재벌들에서 사실상 동일했다면 삼성에서는 시장선점 효과와 ‘총수프리미엄’이 추가로 작용한 셈입니다. 공기업들 가운데서 삼성 같은 기업이 출현하지 않은 이유는 기업 자체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버넌스의 차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스템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방점이 찍힌 ‘총수프리미엄’은 어느 한순간 ‘총수디스카운트’로 바뀔 수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재벌에 무조건적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삼성에 대해서는 가문의 숙적 대하듯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삼성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한 적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삼성개혁’이란 사명감에 몰두하곤 합니다. 삼성을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며 삼성발전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부를 증진시키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삼성, 나아가 재벌을 꼭 나쁘게만 받아들일 까닭이 없다고 봅니다. (당연히 큰) 반론이 있겠지만 당장 재벌 없는 우리 경제가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벌이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으며, 형성과정에서 국민의 부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전해 간 원죄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에 이뤄진 폭압적 ‘부의 이전’은 역설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재벌이 특정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국민의 자산임을 설명하는 근거입니다. 동시에 현재 시점에서 ‘점유’라는 현실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혁명을 통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재벌의 ‘점유’에 일정한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국민적 통제’ 또는 ‘국민적 간섭(intervention)’으로 보완하는 게 최선을 아니어도 차선책을 될 법합니다.

삼성등 국내 대표적인 재벌이 세계시장에서 이렇게 승승장구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필자가 일본 도쿄의 소니 본사로 취재차 출장을 갔을 때는 막 삼성이 소니와 비등비등해지려는 무렵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삼성에 대한 소니의 반응은 “뭐, 어린애가 좀 쫓아왔네.” 하는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입장이 정반대가 됐습니다. 소니가 삼성을 배우려고 합니다.

아이폰이 세계적으로 큰 바람을 일으키면서 삼성의 시련을 얘기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삼성의 위기는 잠시 뒷선으로 물러났던 이건희 회장의 복귀로 이어졌습니다. 이건희 회장 퇴진과 복귀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이 자리에서 논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삼성 내부적으로나 또 경제계에서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더 이상 소니를 거론할 까닭은 없겠고, 그렇다면 삼성의 가장 큰 시련이 아이폰을 내놓은 애플일까요. 스티브 잡스 사망으로 애플이 단박에 몰락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그러한 외적인 위기가 없지는 않겠지만 본질적인 위기 요인은 삼성 내부에 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2008년 4월 이 회장의 일선 퇴진을 초래한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 내부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 회장의 존재 자체가 삼성의 발전에 크나큰 의미를 갖는다면 역설적이게도 이 회장을 삼성에서 내몬 건 이회장 자신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순환출자를 특징으로 하는 삼성의 기업 지배구조와 마찬가지로, 삼성의 위기구조도 순환형이었습니다. ‘비자금 폭로로 이건희 회장 퇴진->이건희 회장 부재로 위기감 증폭->위기 대처 위해 이건희 회장 복귀.’ 이회장이 위기의 원인이며 해법인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해법’에 대해서는 알다시피 역시 강력한 반론이 적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는 100조원 이상의 매출에 10조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우량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있다는 게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삼성전자가 MS나 IBM 등 외국 유수 경쟁기업들의 추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업윤리의 문제로 큰 위기로 맞곤 합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쯤에서 지속가능경영의 현안들이 거론되지 않을 수 없어 보입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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