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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

식량주권이란 국민과 국가 혹은 연방이 농업 식량 정책을 해외의 식량 덤핑 없이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농부들이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소비자들이 사려고 하는 식량과 생산자 그리고 생산 방식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다.

 

아래 글은 <식량전쟁,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라즈 파텔 저, 유지훈 역, 영림카디널 발간. 원제 "Stuffed and Starved")에 대한 서평입니다. 『생명연구』 제31집 (2014년 2월)에도 실렸습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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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탁의 풍요 속에 살고 있다. 

슈퍼마켓 진열대 위에는 다양한 먹음직스러운 식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TV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 등에는 각종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광고가 넘쳐난다. 지구상에 아직 광범위한 기아가 존재하고 영양관련 질병이 유행처럼 번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지은이 라즈 파텔(Raj Patel)은 이 시대 풍요의 진실을 폭로한다. 전 세계 인구의 10분의 1은 기아에 허덕인다. 그 보다 더 많은 인구는 비만이라는 영양관련 질병에 시달린다.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점차로 소작농이 되거나 빚더미에 자살로 내몰린다. 세계무역기구가 농촌의 1순위 문제를 ‘빚’으로 주목할 정도로 농민들의 빚은 세계적 문제로 확대되었다.
 
   
 
풍요를 만끽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풍요의 실체는 무엇인가? 
 
2003년 당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 이경해씨는 자살을 선택했다. 그해 9월 칸쿤(Cancun)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 장관급 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회의장 뒤편에서 그는 “세계무역기구가 농민을 죽인다!”라고 외치고 가슴위로 칼을 내리 꽂았다.
 
전 세계 농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특별히 멕시코 농민들은 “우리도 모두 이경해다. 세계무역기구가 이 씨를 죽였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81쪽)라는 구호를 외쳤다.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국가다. 미국 국경 근처에 넓은 농지를 보유한 농부들 일부는 실리를 챙겼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미국의 값싼 식품가격에 생계터전을 잃었다.
 
특히 전체농토의 60%를 차지하는 옥수수는 정부지원을 받은 미국산 옥수수와 가격경쟁에서 밀렸고, 멕시코 옥수수 재배 농가의 삶은 피폐해졌다.
 
점차 하락하는 옥수수 가격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다. 생산자는 도시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하지 않고 소수의 식품가공업체에 팔아넘긴다. 멕시코에서 옥수수는 토르티아의 주원료인데, 토르티아의 가공업체는 둘뿐이다. 김사(GIMSA)와 민사(MINSA)인데, 이 둘은 옥수수가루 시장의 97%를 차지한다. GIMSA의 소유주는 그루마 사(Gruma SA)로 멕시코 전체 가공업계의 70%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미션 푸드’(Mission Foods)로 유명세를 얻은 멕시코의 이 다국적 기업은 매출 22억 달러를 기록하며 토르티아 시장을 석권했다. 결국 재배농가의 피폐함으로 이익을 챙기는 주체는 가공업체인 ‘중개상’이다.
 
이는 농산물 무역 개방의 당연한 결과였다. 멕시코 농민들이 벌인 시위의 중심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이경해 씨의 죽음 뒤에는 세계무역기구가 있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가 농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유일한 기구는 아니다.
 
식품업계는 온갖 조약과 기구가 한데 어울려 형성된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다국적 기업은 식량 교량의 40%를 통제하며 20개 회사는 커피무역을, 6개 회사는 밀 교역의 70%를, 그리고 한 회사는 1회용 차의 98%를 좌우한다(154-155쪽). 전 세계 식품교량이 소수의 기업에 집중된 것은 시장지배력을 높이려는 기업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합병한 덕택이다.
 
자유시장은 경쟁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증대하고 물가는 하락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경쟁은 오히려 줄었다. 기업들이 경제적 연합을 통해 식품업계에서 경쟁을 축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그 같은 비즈니스 연합은 구성될 수 없다.
 
식품업계는 대체로 민간부문에 속하지만 시장은 기업과 정부가 만들어 낸다. 정치계와 식품업체간의 결탁은 정치기부액이 대변한다. 1998~2004년까지 미국정치계에 식품업계의 4대 기업이 바친 정치자금은 전체의 50%를 훌쩍 넘는다(166-167쪽).
 
라즈 파텔은 세계무역기구에 농업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으며 그 협상 과정은 가장 뼈아픈 부분이었다고 토로한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목표는 남반구 국가들이 농산물에 대한 취급권한을 양도하게 하는 동시에 전략적으로 식량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이는 새로운 식량 유통질서의 구조다.
 
1996년 세계무역기구 총재였던 레나토 루지에로(Renato Ruggier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국가 간의 상호협력 규정을 쓰지 않는다. 단지 단일 세계경제의 기본 틀을 쓰고 있다.”(151쪽) 세계경제 개발의 새로운 기본 틀은 닉슨과 포드 대통령 집권 당시 미 농무부 장관을 지냈던 얼버츠(Earl Butz)가 제안했던 의제와 상통한다. “배가 고픈 자는 빵을 가진 자의 말만 듣는다. 따라서 식량은 곧 수단이며 협상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142쪽)
 
전 세계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차 녹색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생명공학을 이용한 유전자 조작식품(GMO) 개발이다. 이 부분에서 라즈 파텔은 문제의 핵심을 짚는다. 기아의 원인은 식량부족이 아니다. 그들이 배가 고픈 주요한 까닭은 식량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인구 증가론과 빈곤’에 대한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이론을 이용하면서, 남반구 국가들의 기아와 빈곤의 원인을 식량부족으로 해명하는 까닭은 우선적으로 식품업계의 운영을 정당화할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서다. GM 작물의 배후에 있는 회사들은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며, GM식품 재배를 위한 특별한 살충제를 독점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식품의 폐해는 만만치 않다. 그 종자들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점차로 더 강한 살충제를 요구하며 생태계는 파괴되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종자를 사용한 전 세계 농민들 역시 대부분 파산하고 일부는 자살했다. 식량위기에도 불구하고 2000년 남아프리카 가톨릭 주교회의는 아프리카에 GM식품 및 종자를 공급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농촌의 손해로 도시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가 확대되고 개량품종을 싼 값에 소비할 수 있는 소비의 효율성이 증대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자신이 재배할 종자를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듯이, 식품을 선택할 자유 역시 소비자에게 없다. 이들은 모두 식품이 생산지에서 식탁으로 유통되는 과정인 ‘생산그물(chain of production)’에 얽혀있으며, 이들의 선택은 구조적으로 강제되어 있다.
 
세계 시장의 자유는 식품 생산자인 농민들과 소비자에게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식료품 상점의 식품들은 오래 저장해도 변질되지 않으며 장거리 운송에도 손상되지 않도록 만들어 진다. 수개월이 지난 초콜릿은 부패하지 않으며, 장거리를 달려온 사과는 전혀 멍들지 않고 여전히 먹음직스럽다. 도시 소비자들은 포장되거나 가공한 식품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식품은 점차로 밭에서 멀어진다.
 
유기농 식품이라 해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 선택의 차이란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랜드의 차이일 뿐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과 남아프리카의 비만 수준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반구에서 절대 빈곤층(12.7%)이 가장 높은 국가이며, 남아프리카는 남반구에서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이다.
 
녹지공간을 자주 이용하는 유럽도시에서 비만의 확률이 40% 낮아진 결과와 대조된다. 이 사실은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구조적 강제가 더욱 열악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들은 패스트푸드와 저가 식품을 자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2005년 발행된 세계 유수의 잡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현재 비만에 따른 연간 의료비용은 낮게 잡아 7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당뇨병 환자가 급증하고 그들의 평균연령이 낮아지는 가운데 당뇨 합병 질환-심장병, 뇌졸중, 수족절단, 신장병, 실명 등-에 대한 비용은 폭증할 것이다.”(387쪽).
 
이렇게 이 책은 오늘날 식품에 관련된 구조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헤친다. 지은이는 학자이자 활동가답게 국제기구의 의도, 그에 맞춘 각 국가정책, 정계와 시장의 결탁, 그리고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비인간적 삶을 구체적 자료를 통해 정확하게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농민 운동과 환경운동, 소비자 운동 등을 소개하면서 이 거대하고 암울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한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모두 건강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소수의 기업가들이 이윤을 취할 수 있는 권리보다 우선한다. 물론 생태계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기업가의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거대한 권력의 연합체에서 어떻게 건강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은이 라즈 파텔은 식량주권(food sovereignty) 운동을 제안한다
 
 “식량주권이란 국민과 국가 혹은 연방이 농업 식량 정책을 해외의 식량 덤핑 없이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농부들이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소비자들이 사려고 하는 식량과 생산자 그리고 생산 방식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다.”(420쪽).
 
식량주권은 세계화에 반대해서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고자 음식문화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식품업계의 권력자들이 무력한 사람들을 학대하는 행태를 고치기 위한 비전이다. 이 비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가공식품을 선호하는 기호를 바꿔라. 현지 특산물과 제철에 맞는 음식을 즐겨라. 농업과 환경을 생각하라. 생산현장과 소비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신토불이 업체를 지원하라.’ 등이다.
 
최근 몇 십년간 한국 사람들은 웰빙(Well-Being)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웰빙 상품들 역시 상업화되면서 웰빙은 새로운 생활방식 운동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웰빙은 단지 건강한 식품과 상품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이 책은 참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식품을 비롯한 상품의 유통구조와 그 배후에 있는 기업들의 운영방식 그리고 농민과 도시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이 말은 단지 소비자의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시민으로서 우리는 스스로 ‘생산그물(chain of production)’의 운영방식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글/심현주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지니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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