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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2>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란?두번째 이야기

아래 인터뷰는 2013년 초중반에 진행되었으며 본래 2013년 12월에 발간된 <굿바이 근혜노믹스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지은이 정승일엮은이 공은비)에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책으로 묶을 수 있는 분량 기준에 넘쳐 책의 출판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되었다앞으로 <지속가능저널지상에서 그 인터뷰를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누어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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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첫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부의 상속특권의 세습  

공은비로스쿨 학비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오히려 요즘은 부잣집 자식들이 변호사 되는게 더 쉬워진 것 같아요아무튼 부의 상속이 반칙과 특권을 낳는 근원적 원천이라면 상속세율을 크게 높이는 게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요즉 상속세를 높이는 것이 반칙과 특권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서 아주 중요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승일 그렇죠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부유층 전반의 반칙과 특권을 없애려면 출총제와 순환출자 규제 같은 재벌그룹개혁 사안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상속세를 어떻게 개편할지와 같은 일에 더 집중해야 해요
 
그런데 상속세를 더 세게 해서 부모의 부가 자식들에게 무상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는 경우에도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설령 상속 재산에 대하여 상속세를 100% 때려서 자식들이 물려받는 재산을 0으로 만드는 경우에도 다른 문제들이 남아요가령 아버지가 대학 교수인 경우물려줄 물질적 재산은 전혀 없다 하더라도 그 아버지가 조성한 우수한 정신적 교육 환경은 물려받거든요
 
반면 그러한 교육적 환경의 혜택을 물려받지 못하는 다수가 있는 거죠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진심으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초등학교부터 대학대학원까지 무료 공교육을 시행하고또한 가까운 곳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우수한 공립도서관을 대폭 확충해야죠아버지가 교수가 아니라도 모든 아이들과 학생들이 최대한 동등한 지적 환경, 좋은 교육환경 하에서 자랄 수 있게 해야 하는 겁니다이 정도는 되어야 공정·공평한 사회 아니겠어요
 
공은비 그런데 상속세를 강화하고 동시에 공교육과 공립도서관을 대폭 강화하는 것은 모두 복지국가를 구축하자는 것이지공정한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네요그리고 복지국가를 구축해야만 진정하게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와 관련해서 질문인데그렇다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 그 자체는 매우 소중한 것 아닌가요단지 자유주의자들은 그 말을 지나치게 공정한 시장질서’ 하나로만 해석하는 것이 더 큰 문제는 아닐까 하는데요
 
정승일 맞습니다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누구나가 평등·공평하게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공정한 경제공정한 사회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문제는 그 반칙과 특권의 내용과 실체가 뭐냐는 겁니다그게 명확해야만 공정·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의 실체와 내용이 분명해지죠
 
자유주의는, 보수적 자유주의자건 진보적/개혁적 자유주의자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부인하지 않아요존 로크나 아담 스미스볼테르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축을 이루는 사유재산권과 자유 시장 경제를 자연 상태(자연법)으로 보면서 긍정합니다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공병호와 복거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고요그에 반해 자유주의 그 자체를 배격한 루소나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시장 경제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작동하려면 완전 경쟁이 되어야 해요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요와 공급이 완전 경쟁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완전 경쟁 상태가 되어야만 공정·공평하다고 말합니다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공정·공평은 주로 경쟁적 시장질서에 관한 거예요
 
그렇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이 경쟁은 아니고더구나 경쟁에 시장 경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경쟁보다 서로 협력하여야 할 사안들이 많고더구나 경쟁이라 하더라도 수익을 위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시장 밖에서의 비영리 목적을 위한 선의의 경쟁도 많거든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그 실체는? 
 
공은비 달리 말하자면,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공평한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테제는 매우 올바르고 정당하지만그 자체만으로는 내용과 실체가 없는 공허한 말일 수 있다그거네요
 
정승일 그렇죠그런 말은 자유주의 경제민주화론자도 할 수 있고공산주의 혁명가도 할 수 있어요또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론자도 할 수 있고요따라서 마치 복지국가가 정의롭고 공평·공정한 세상과 무관한 양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유주의의 관점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무릇 정의(正義)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법조계 인사들이에요사법부야말로 한 나라의 정의를 지키는 보루라고 말합니다그리고 서구에서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정의의 여신상이에요오늘날 서구어에서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Justitia에서 생겨났다고 하는데 정의의 여신이 바로 유스티치아(Justitia)에요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한 손에 저울을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는데저울은 개인 간 권리 다툼에서 특정 한편을 편애하지 않고 공정·공평하게 해결한다는 것을 뜻하고칼은 그러한 판결과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해서는 제재와 처벌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요또한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데 이 역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공정한 입장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와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로 법은 그 자체 정의이고 공평·공정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어요말하자면, ‘정의롭고 공정·공평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은 근대 자유주의의 특별한 발명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공은비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어려운데만약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롭고 공정·공평한 세상이라는 것이 근대 또는 현대의 특징이 아니라 고대의 이집트그리스·로마 때부터 법전에서 늘 이야기되던 것이라면도대체 무엇이 전근대 사회의 공정·공평과 근현대 사회의 공정·공평을 구별 짓는 거죠? 4천년 전 이집트 시대에 통용되던 사회정의와 현대의 서구 사회에 통용되는 정의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요?
 
정승일 그 점이 문제라는 겁니다. 4천 년 전의 파라오 이집트 시대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귀족 신분과 일반 평민 신분 사이에 신분제적 차이가 있었어요노예들에 대한 인권 개념도 없었고 인구의 대다수인 농사꾼들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권리 부여 역시 미약했어요
 
그런데도 그 시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그리고 그 시대의 법제도 속에는 정의와 공정·공평의 관념이 있었어요말하자면 노예의 존재가 그 시대 인간들의 정의 및 공정·공평의 감각에 전혀 거슬리지 않았던 겁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탐구한 인물 중에 플라톤(Platon)이 있어요그는 왕과 귀족군인일반 시민노예 등이 각자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말해요말하자면 신분제적 차별노예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비판적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던 거죠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마찬가지였고요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등이 정의롭다고 말한 동아시아의 공자와 맹자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오늘날 근현대를 말하자면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선진국에서도 법조계 인사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라는 임마누엘 칸트의 실천 이성 명제를 좌우명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특히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앞장서온 법조계 인사들은 더욱 그럴 거예요
 
그리고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 역시 정의와 공정·공평에 대해 대단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여요그리고 강금실 전 장관을 비롯해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소속 변호사들을 포함한 대다수 법조계 인사들이 복지국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어요이들의 대부분 역시 복지국가보다는 정의·공정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에 직면하였을 때 법조인들이 정작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거라고 해요
 
정의란 무엇인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공은비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네요만약 4천 년 전의 이집트, 2천 년 전의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롭고 공평·공정한 원칙에 대하여 사람들이 말했다면그런 통시대적 정의론은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이어서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직면하는 경제 현실에서 비롯되는 구체적 의문점들에 답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데요
 
정승일 노예제가 경제제도로 유지되던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남의 빚을 갚지 못한 이들을 채무노예로 삼는 것이 정의·공정 관념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고 해요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는 것도 정의롭고 명예로운 일이었고요우리나라 조선 시대를 보면 가부장제와 신분제 하에서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고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대우 받는 것이 당연하고 정의로운 일이었어요
 
이렇듯 각 시대에 따라 경제제도가 다르고 경제 현실이 다릅니다그리고 그렇게 서로 다른 경제현실과 경제제도에 따라 정의란 무엇인가공정·공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다르게 나와요
 
그리고 이점은 오늘날의 논쟁에서도 마찬가지에요하이에크나 공병호복거일 같은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정의로운 체제특권과 반칙이 없는 체제라고 말해요앞서 말한 미국의 노직도 같은 생각이에요.
 
신자유주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제대로 작동하는 자유 시장의 작동은 성별인종별계급별로 다양한 특권과 반칙을 없애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말했어요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발전은 여성 차별과 인종 차별계급 차별을 없애며 더 나아가 특권층의 특권적 지위도 없앤다는 겁니다
 
사실 이 말이 일리가 있는 게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가장 궁극적인 차별과 특권은 어떤 사람이 돈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좌우되지그가 여자인지 검둥인지가난한 집 출신인지는 묻지 않거든요그래서 18세기에 출현한 자유주의 사상은 자유 시장과 절차적 민주주의보편적 인권을 통해 대부분의 특권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어요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차별그에 따른 특권은 빼고요
 
아무튼신자유주의자와는 달리 개혁적(진보적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이 아닌 공정한 시장만이 정의로운 체제라고 말해요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자유시장이건 공정 시장이건모든 자본주의적 시장질서 그 자체가 불의와 착취의 체제라고 비판하면서 오로지 사회주의 경제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인간들 사이의 공평·공정을 실현하고 있다고 보는 좌파들도 있어요
 
이렇듯 반칙과 특권이 업는 세상정의와 공정·공평이 넘치는 세상이라는 말만으로는 그야말로 형식과 절차상의 정의론에 불과한 겁니다그 정의와 공정·공평에 내포된 실체와 내용에 주목해야 해요그리고 그것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사회민주주의와 보수주의 등 서로 다른 경제관과 세계관에 따라 크게 달라져요그리고 노예제 사회냐 봉건제 사회냐 아니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냐에 따라서도 아주 크게 달라지고요
 
(다음에 계속됩니다)
 

글/정승일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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