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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1> 문재인과 한명숙은 왜 실패했는가?
아래 인터뷰는 2013년 초중반에 진행되었으며 본래 2013년 12월에 발간된 <굿바이 근혜노믹스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지은이 정승일, 엮은이 공은비)에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책으로 묶을 수 있는 분량 기준에 넘쳐 책의 출판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되었다
앞으로 <지속가능저널지상에서 그 인터뷰를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누어 연재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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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비: 오늘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해보죠정의란 무엇일까요사전을 찾아보니 정의란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또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고 나와 있더라구요. 
 
그 밖에도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겠죠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정의라고 부를 수도 있고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얻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상태도 정의라고 할 수 있어요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하면 상을 받는다고 하는 상식적인 기본 룰(rule)을 확립하는 일도 사회 정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국민들에게 한결 같고요진보건 보수건 똑같이 정의 구현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과연 정의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어요먼저정승일 박사님 역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시지 않나요그리고 그러려면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요? 
 
   
 
정승일그럼요정의로운 세상참으로 정의의 물결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요 희망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그러기 위해서는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적절하게 개입하는 그런 경제가 필요다고 보는 거구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형태의 국가개입론이 등장했습니다하나는 복지국가론이고 또 하나는 공정국가론입니다복지국가론이란 나처럼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입장이고 보편적 복지와 함께 산업민주주의(즉 노동권)를 강조합니다
 
그에 반해 공정국가론이란 반칙·특권 세력인 재벌과 모피아를 해체하여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공평한 세상정의로운 경제를 만드는 게 복지국가보다 더 시급하고 소중하다는 입장이요
 
문재인과 한명숙은 왜 실패했는가? 
 
공은비 공정국가공정한 시장 질서를 강조하는 분들은 유별나게 정의와 공정·공평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시네요왜 그런 거죠? 
 
정승일 반칙·특권 세력의 척결을 위해 재벌개혁과 경제관료(모피아타도가 필요하고 그래야만 공정한 시장질서가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분들은 시장 경제는 근본적으로 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재벌과 관치 같은 시장 '왜곡' 요인만 없다면 본질적으로 정의롭고 공정·공평하다는 거죠그런데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유주의 경제사상이에요
 
노무현 정부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삼았어요그리고 그 노무현 정신을 승계한 후계자인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2012년 내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복지국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경제민주화-재벌개혁에 관하여 이야기했어요
 
순환출자 규제와 출자총액제한지주회사 규제금산 분리 등의 강한 재벌규제 방안을 내놓으면서박근혜 후보의 재벌 공약은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지요복지국가와 노동시간 단축비정규직 차별 시정 등의 복지-노동 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내세우지 않았고요
 
공은비 그렇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복지국가고 경제민주화고 할 것 없이 선거판에서 별로 특별한 쟁점이 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요
 
정승일 그 말도 맞아요왜냐하면 문재인안철수 후보만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까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 통에 미래 비전이나 정책을 가지고는 후보 간 차별화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문재인 캠프에서는 정책 대결이 아니라 인물 대결과거사 논쟁(박정희-장준하 논쟁)으로 선거 전략을 끌고 갔어요
 
결국 그것이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됐죠사실 그것이 문재인 캠프에 내재된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한계였습니다박근혜 후보가 하겠다는 복지국가가 스웨덴 수준도 아니라 미국 수준도 안 되는 낮은 수준의 것인데그렇다면 문재인 쪽은 더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제시하고 그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과 그림을 보여주면서 박근혜 후보와 차별화했어야 했거든요
 
공정한 시장질서가 복지국가보다 더 정의롭다? 
 
공은비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는데복지국가 역시 그 자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롭고 공정·공평한 세상에 속하지 않을까요스웨덴 복지국가에 반칙과 특권이 만연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오히려 복지국가에서야말로 인간의 인권과 평등이 가장 잘 보장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정승일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상대적으로 박탈당한 처지에 있는 빈민과 서민중산층을 도와서 그들의 삶을 풍요롭고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복지국가 운동이야 말로 사회정의와 인간존엄성자유와 평등을 고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먼저 보수적인 시장주의자들 즉 신자유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복지국가는 정의롭지도공정하지도 못한 체제에요왜냐하면 복지국가는 개미처럼 열심히 땀 흘리고 검약하고 저축하여’ 부를 축적한 부유한 사람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여 그 돈을 게으른 배짱이 같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정의롭고 공정한 체제'라고 봅니다노직(Robert Nozick)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빈부격차가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의롭다고 말해요그리고 복지국가 정부가 부유층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겨 그들의 소득을 가난한 이들에게 재분배하는 정책을 일종의 강도질로 간주합니다정당한 노력에 의해 쌓은 부를 강제로 약탈하는 날강도질이라는 거죠.
 
공은비 그렇다면 민주주의 세력은 어떻게 생각하죠개혁적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이들도 복지국가의 필요성은 말하고 있으니그들은 그래도 훨씬 낫지 않나요?
 
정승일 조금 낫기는 합니다하지만 자유주의의 진보성을 말하는 많은 정치인들이 마치 복지국가는 정의 및 공정·공평과 무관한양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문재인 후보는 2012년 내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복지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이며따라서 공정과 공평의 회복이라고 말했어요. 2010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한명숙 씨 역시 똑같은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녔어요
 
즉 복지국가는 그 자체 사회정의 및 공정·공평과 별 상관없다는 겁이다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2012년 3월 5일자 한겨레신문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복지라고천만에, ‘공정이다>라는 제목의 칼럼도 썼죠
 
공은비 그렇다면 문재인과 한명숙 등 정치인들과 그리고 그런 명확한 제목의 칼럼을 쓰신 김동춘 교수 등은 복지국가 없이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아니복지 없이 공정할 수 있나요정말 그 뜻인지 궁금하군요여기서 공정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승일 자유주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최고의 정의·공정 실현 방안은 바로 공정한 시장질서’ 원칙의 구현이에요그리고 '공정 시장질서 구축'을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는 과제가 바로 재벌그룹 규제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일이 되고요
 
공은비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시장질서가 구축된다고 해서 정의로운 사회가 나타날까요자꾸 일종의 말장난처럼 되는데요당연히 공정한 질서가 이뤄져야 하는 건 맞습니다누구나 동의하죠
 
그런데 공정한 경제 질서라는 것이 손에 잡히는 뚜렷한 개념이 아니지 않나요이미 우리 사회는 지금도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반면에 이루 말 할 수없이 불공정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정의로운 세상사회정의를 이루려면 적어도 자본 즉 돈이 많은 사람이건 별로 없는 사람이건 누구나 행복한 삶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하고돈 즉 물질의 부족이 문제로 된다면 국가가 뒷받침해줘서 적어도 평균 선으로 끌어올려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오히려 제 생각에는 그 공정한 시장질서가 먼저가 아니라복지와 공정이 서로 맞물리면서 함께 가야 할 것 같은데요열 일 제치고 재벌그룹 규제를 먼저 한다고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고질적 폐해들빈부격차를 과연 고칠 수 있는 건가요?
 
정승일 당연히 그렇지 않죠그렇지만 김광수나 정운찬장하성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은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게 되면 누구나가 '자신의 노력에 상응하는 시장소득'을 얻으므로 빈부격차가 확실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해요전형적인 주류 경제학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각이죠
 
반칙과 특권이 없는 시장 경제란 누구나 공정한 룰(규칙)을 지키면서 경쟁하는 시장이고따라서 누구나 '경쟁적 시장에 참여 또는 진입할 기회'를 동등하게 가져야겠죠그렇다면 그렇듯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가로막는 시장 '왜곡' 요인 즉 반칙 특권 세력은 무엇일까요
 
단지 재벌과 모피아만이 아닙니다학벌 좋은 자들의 특권과 반칙공무원 및 공공부문의 반칙과 특권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반칙과 특권의사·변호사들의 반칙과 특권 등 모든 특권 반칙 세력이 모두 문제됩니다
 
이들 모두가 시장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저해하는 시장 '왜곡' 요인이라는 거에요따라서 자유주의의 옹호자들은 재벌과 노동조합공무원(행정고시), 의사(의사고시), 변호사(사법고시등 일체의 독점과 특권을 비판하면서 그것들 모두를 해체하여 '완전 경쟁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말해요이런 식으로 말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 씨에요
 
그들은 그러려면 재벌그룹을 깨야 하고민주노총 등 노동조합도 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또한 의사와 변호사공무원공기업 임직원과 같은 철밥통 일자리 역시 특권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것 역시 깨야 한다고 말하고요
 
그런데그러려면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공무원과 교사, 공기업 종업원의 숫자를 줄여야 하죠소수의 특권적 법조인을 양산해온 사법고시 제도를 없애고 그 대신 시장 논리에 따라 법조인을 양성하는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요그래야만 자유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법조인들이 대량으로 공급되어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누려온 특권적 고소득이 줄어들 테니까요
 
마찬가지로특권적인 의료인을 양성해온 의과대학을 없애고 그것을 미국식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바꾸려 했던 겁니다그래야만 자유 시장 논리에 따라 의사들이 대량으로 공급되어 의사들이 그간 누려온 부당한 특권적 지위가 무너진다는 거고요
 
노무현 정부는 실제로 재벌그룹 개혁을 했고민주노총과 같은 대기업공무원공공부문 노동조합을 깨고자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었고요. 진보적인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 그런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한 건데, 하지만 그게 바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인 겁니다. 노무현 정부는 또한  미국식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어요철두철미 자유주의 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주의 노선을 관철해나간 겁니다
 
공은비 상고를 나와 변호사를 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가 사법개혁을 추진한 이유는 기존의 사법고시 같은 고시 제도들이 전근대적인 과거제도의 유산이고 따라서 특권과 특혜의 온상이라는 사고방식에서 아니었나요? 
 
정승일 그렇죠전근대적인 사법고시 제도를 없애고 현대적인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서울대 등의 학벌 독점이 해체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그런데 과연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 좋아진 게 있나요
 
로스쿨 제도와 함께 변호사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맞는데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이 느끼는 변호사 서비스가 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어요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와 난립하게 되니까무한경쟁 체제 하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진 일부 변호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온갖 편법적인 일에도 손을 대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고요
 
양심적이고 원칙을 지키는 법조인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졌고그래서 사회정의를 위해 애쓰는 법조인의 비중도 훨씬 줄고 있다고 하죠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짐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 현실의 냉혹함과 이기주의가 더욱 판을 치게 된 거에요그리고 실제의 실력과 능력보다는 집안 배경 좋은 로스쿨 졸업자들이 랭킹(순위)이 높은 로펌(법률회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는 건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로스쿨 등의 도입에 따라 '학벌적 특권' 등은 일부 해체되고 있을지 몰라도오히려 어떤 부모를 만나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좌우되는 특권('상속적 특권')은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을 뜻해요그만큼 특권과 반칙이 더 횡횡하게 되었다는 거죠
 
앞서 공 기자님이 질문하신 것처럼 과연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게 한다고 해서즉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출세 기회(기회의 평등)를 갖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나요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 경제는 그냥 시장 경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요그리고 다들 알다시피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출발점부터 달라요
 
사유재산제와 함께 부가 상속된다는 것이 자본주의적 소유 제도이거든요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생의 출발점부터가 공정·공평하치 않고 반칙과 특권이 횡횡하는 겁니다
 
자본주의 그 자체가 반칙과 특권꼼수로 가득 차있는 체제인데, 자본주의는 문제 삼지 않고 오직 재벌과 노조공무원과 공기업그리고 의사·변호사 등의 특권만 문제삼는다그게 바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한계인 겁니다문재인과 한명숙그리고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을 이끄는 인물들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프레임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고요. 지금도 여전합니다. 
 
(다음예 계속 됩니다)
 
인터뷰/공은비 기자
 
정승일
199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훔볼트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에 창립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안연대회의'의 창립멤버이자 운영위원이었으며, 2007년에 창립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정책 및 운영위원을 지냈다. 현재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이며, 또한 미디어리퍼블릭 편집기획위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Crisis and Restructuring in East Asia>,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과 공저),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공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이종태와 공저), <굿바이 근혜노믹스> 등이 있다.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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