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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감독 윤영선의 포토 에세이'사람'이 중심이다

사회민주주의 또한 ‘사람’이 중심이다. 중심이어야 한다. 민중의 염원이 구현된 세상과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 다르지 않으리라. 그 염원과 이상이 실현될 미디어리퍼블릭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시대의 미륵이 되기를 기원한다. 일어나지 못해 전설이 되어버린 와불이 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당래불이기를 바란다. 

 

   
▲ 사진/윤영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구현된 공간, 운주사(雲住寺). “구름이 머문다”는 의미로 “배가 다닌다”는 뜻에서 운주사(運舟寺)로도 표현된다. 

신라 말의 승려 도선국사(827~898)가 “우리나라 산천의 형세는 배가 움직이는 것과 같다. 호남이 영남보다 산맥이 적어 동쪽은 무겁고 서쪽은 가볍다.”고 말하며 “유리한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운주사에 탑과 불상을 세워 무게중심을 잡았다”고 운주사 건립의 의미를 밝혔다는 설화(說話)가 전해온다. 비보풍수(裨補風水)이다. 창건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1481년에 발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사라지고 천불천탑만이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42년까지만 해도 석불 213기와 석탑 30기가 존재했다고 한다. 

불교가 중흥했던 시대에 세워졌을 것은 분명하지만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건립되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운주사에는 천불천탑과 함께 와불(臥佛)의 전설이 전해진다. 미륵(彌勒)이다. 미륵신앙이 민중에 회자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가 살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전쟁이 많다는 것은 억울한 죽음이 많다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과 피폐해진 삶이 기댈 곳은 미륵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패를 하던 삼국시대가 그러했고 당나라와 연합한 통일신라가 그러했고 후삼국 시대, 고려가 그러했다. 호란과 왜란이 휩쓸고 간 조선 또한 매한가지이다. 개화기에는 수많은 밀교(密敎)가 등장했고, 또한 미륵이었다. 

미륵(彌勒)이 무엇인가? 56억년 뒤에 오시는 부처님을 말한다. 석가모니도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이다. 새로운 시대의 메시아이다. 그러나 머나 먼 미래의 부처의 존재가 현재의 팍팍한 민중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시대에 천지개벽이 이루어져야한다. 내가 살아 있을 때의 부처님이어야 한다. 미래불(未來佛)이 아니다. 현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당래불(當來佛)이다. 당래불을 위하여 민중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 

   
▲ 사진/윤영선

황석영은 소설 <장길산>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과 염원의 실패를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미완성에 두고 있다. 와불(臥佛)이 일어서면 하루아침에 새로운 세상이 이루어지는데 단 하나의 석탑이 완성되지 못하여 와불은 일어서지 못했다. 닭울음 소리와 함께 ‘새로운 아침’은 그렇게 사라져버렸고 운주사는 전설(傳說)이 되었다. 

   
▲ 사진/윤영선

기존 질서와는 다른 불탑과 석탑 양식. 샤머니즘적 요소와 이름난 석공의 솜씨가 아닌 평범한 농부가 만든 것 같은 소박한 고졸미(古拙美). 북두칠성의 별자리 위치와 밝기를 원형의 바위크기로 정확히 표현한 칠성바위. 뒤죽박죽인 시대별 양식의 혼재한 무질서의 질서가 자리잡은 염원의 땅. 어느 것 하나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공간이 운주사이다. 

 선암사 주지스님이셨던 지허스님께서는 “기존질서가 세운 곳이 아니다. 땡추들이 세웠으리라. 파격이다”라고 하셨다. '땡추'라는 표현은 비하(卑下)의 뜻이 아니다. 기존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천불천탑을 세우고 와불이 일어서는 그날을 꿈꾸던 한 많은 민초들은 어찌되었을까? 역사는 세상이 뒤집힌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태평성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천년의 세월 동안 와불은 누워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권력에 저항하는 ‘반란의 소굴’을 그만 두었을 리 만무하다. 천불천탑의 염원은 이제 80기의 석불과 17기의 석탑으로 남아 천불천탑을 증거한다. 

 

   
▲ 사진/윤영선

 

폐사지였던 운주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정치군인들이 득세한 시대였다. 1980년 6월, 이곳이 문화재보호지역으로 지정되고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마무리 무대가 이곳 운주사로 설정되고 난 이후부터이다. 

격변의 80년 6월에 문화재보호지역 설정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전라도 지역 지식인들은 권력의 눈을 피해 이곳 운주사에서 시대의 아픔을 토해내었다. 80년 5월, 피로 물든 총칼로 잡은 권력의 시선이 이곳을 주시했으리라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세월의 무게에 스러져간 미륵이 피로 물든 권력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 사진/윤영선

 

 백성이 고통받으면 시대를 초월해서 또 다른 형태의 ‘미륵’은 등장한다. 백성! 아니, 국민이 피흘리고 고통받는데 그걸 모르는 위정자가 존재한다. 소통하지 않고 군림하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패망한다. 새해가 밝았으나 북악산 위정자의 판단은 흐린듯하다. ‘사람’이 보이지를 않는다. 

   
▲ 사진/윤영선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사회민주주의 또한 ‘사람’이 중심이다. 중심이어야 한다. 민중의 염원이 구현된 세상과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 다르지 않으리라. 그 염원과 이상이 실현될 미디어리퍼블릭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시대의 미륵이 되기를 기원한다. 일어나지 못해 전설이 되어버린 와불이 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당래불이기를 바란다. 

   
▲ 사진/윤영선

운주사가 그립다. 아! 미륵이 그립다. 

 

글.사진/윤영선

<구제역,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골목길 구제금융' 전당포를 가다> 등의 사진에세지를 다수 게재한 바 있다. 사회현상적 문제를 '사람'의 모습과 결부시켜 사진에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다큐감독이자 사진작가이며 문화컨텐츠 진흥을 위해 아카이브 구축활동 중이다.

윤영선  sdjournal.korea@gmail.com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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