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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정의와 연대 (4)사회민주주의의 가치관

<자유와 평등, 정의와 연대 (3)>에 이어서

사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서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일견 모순된 요구에 직면한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는 그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경제 원리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어설프게 통제하고 관리하려 하다 부작용과 반발만 낳게 되면 경제의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에 손상만 입고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에는 1.시장순응적(시장 원리에 순응), 2. 시장 보완적(시장 원리를 보완), 3. 시장 저항적(시장 원리에 저항), 4. 시장 대체적(시장 원리를 국가개입으로 대체)의 네 가지 방식이 있다.(14) 사회민주주의는 사안별로, 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이 네 가지 범주를 적절히 배합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에 가장 근접해 있는 건강보험을 보자. 우리나라에서 의료의 공급은 대부분 민간병원이 수행하며, 다만 주식회사 같은 영리병원은 설립할 수 없게끔 돼있는데, 이것은 공공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할 만하다.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민간병원이 맡고 있는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의 NHS 같이 공공적 시스템이 의료서비스 공급을 독점하는 데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점은 피할 수가 있다. 하지만 민간병원 비중이 너무 높은 것 역시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절한 비중으로 공공적 의료서비스 기관이 설립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편 건강의료의 비용조달에 있어 우리나라는 사회보험료, 즉 건강보험료 납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 결과 보편적 의료서비스와 함께 지불능력(소득)을 고려한 사회보험료 납부 체계라고 하는 좋은 제도를 구비하고 있다. 다만 건강보험에 의해 커버되지 않는 개인적 의료비 부담에 대한 문제는 아직 남아 있고, 그 틈을 사영 보험회사들이 파고들어 과다한 보험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처럼 건강·의료에 관련해 우리나라의 경우, 공급은 시장순응적이지만 비용조달은 ‘시장대체적’인 방식이 서로 조합돼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창의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대부분의 기본 생활재를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민주주의에서 기조를 이루는 정책 노선은 무엇보다 먼저 ‘시장 대체적’ 방식이다. 그러나 시장대체적 정책도 얼마든지 시장보완적으로 기능하게끔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실업에 따른 생계곤란의 문제를 비시장적 방식, 예컨대 실업보험 즉 고용보험으로 해결하면서, 동시에 구직활동보조와 무료로 제공되는 직업재훈련을 통해 복지와 재분배를 성장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성공했다고 ‘우리도 된다’는 식의 접근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정책과 전략의 구현을 위한 전제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은 강력한 산별노조를 등에 업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모든 기업에 작동하도록 하여 생산성 낮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 경제 성장을 유도한 노선이다. 멋진 노선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직장 간에는 고사하고 동일 직장 내에서도 동일노동-차별임금을 주거나, 대기업 중소기업 간에 엄청난 생산성 격차와 차별적 고용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런 노선을 구사하면 아마도 당분간 부작용과 반발이 매우 클 것이며 자칫 크게 좌절할 것이다. 요컨대 스웨덴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현재적 조건을 구체적으로 고려하면서 창의적으로 노동운동과 사회민주주의의 노선과 전략을 개발해야한다. 

한국은 지난 20년간의 신자유주의 노선의 결과 현재 사회경제적 문제가 산더미처럼 누적해 있고 국민들은 고통에 절규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누적된 문제와 고통스런 절규에 대해 다른 어떤 정치사상보다 더 나은 대안적 정책노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이지만, 그것을 누가, 어떻게 가져갈 수 있는지는 이론적, 실천적 능력과 지도력에 달려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유명한 정책가인 비그포르스는 “사람들은 리더쉽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들에게 리더쉽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라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 정치는 이러한 역사적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5천만 국민의 현실적인 삶의 고난과 고통에 응답하여 희망의 리더쉽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반응할 것이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가 아시아에서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아시아의 변영과 평화를 넘어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글/조원희

국민대 경상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대표적 저서로 <한국경제의 위기와 개혁과제>(공저·1997), <사회민주주의선언>(공저·2012) 등이 있다.

(14) Olaf Cramme & Patrick Diamond, 『After the Third Way: The Future of Social Democracy in Europe』, p.54 - Wikipedia, 2013에서 재인용.

 

<참고 문헌>

가리타니 고진(2010)  <세계사의 구>』, 조영일(역), 도서출판b, 2012.

박호성(2005)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전>』, 책세상.

셰리 버먼(2010) <정치가 우선한다>, 김유진역, ㈜후마니타스.

이근식(2011)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최태욱(편저)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폴리테이아.

조원희・정승일(2012) <사회민주주의 선언>, 홍진북스.

Wikipedia(2013) “Social Democracy”,  http://en.wikipedia.org/wiki/Social_democracy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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