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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정의와 연대 (2)사회민주주의의 가치관

<자유와 평등, 정의와 연대 (1)>에 이어서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에서 출발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중대한 오해는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을 강조하고 평등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중대한 오해는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을 강조하고 평등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에서 시작한다. 물론 인간의 자유로운 자아실현과 자기 활동을 위해서는 물질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평등한 물질적 조건을 모든 개개인에게 마련해주는 일도 사회주의의 핵심 관심사이다. 그렇지만 이때의 평등은 어디까지나 진정한 개인적 자유를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이지, 평등 그 자체가 사회주의의 가장 일차적인 가치이기 때문은 아니다. 

승리라 불릴 수 없는 ‘상처뿐인 승리’(pyrrhic victory)라는 서양말이 있는데(3), 자유주의가 찬성하고 자본주의의 경제 현실이 용인하는 유일한 자유는 최악의 경우 굶어죽을 자유이고, 최선의 경우에도 자본에 대한 최상급 노예(고용 사장)가 되어 돈을 벌어가는 자유일 뿐이다. 이것은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한다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며, 그저 여러 명의 고용주 또는 자본가 중 그나마 조금 나은 주인을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에 머문다. 

형식적 자유에 불과한 이 자유는 시장경쟁을 통해, 일물일가 법칙의 일종인 ‘동일노동-동일임금’을 가져오고 그런 의미에서 물질적인 평등(평등!)을 보장하는데, 하지만 이러한 ‘평등’은 자산과 자본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소극적 평등’일 뿐이다.(4) 일체의 신분제적, 인종적, 종교적 구속과 차별·불평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형식적 평등으로부터 유도되는 자유,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을 통한 확보되는 개개인간의 물질적조건의 평등만으로는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제한하는 제한된 평등에 머무를 뿐이며, 따라서 제한된 자유, 즉 형식적 자유에 머무를 뿐이다. 

시장 자본주의는 결코 ‘실질적 자유’, ‘적극적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며, 이 점을 직시하고 시장 자본주의를 뛰어 넘으려는 정치적 기획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이다. 자유로운 자아실현, ‘실질적 자유’ 또는 ‘적극적 자유’는 사회(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제1차적 가치이다. 사회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자기계발 같은 적극적 자유권이 ‘모든 개인의 동등한 시민권’이라는 의미에서의 ’적극적 평등‘을 요구한다. 

또한 자유시장과 자유경쟁은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소외를 만연시킨다. 자유주의가 여전히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 경쟁은 가족과 지역공동체, 공동체적 미덕과 도덕, 상호부조 관계를 파괴하여 개인들을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 떠있는 돛단배 또는 모래알 같은 원자들로 달랑 남겨 놓는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파괴된 공동체를 복고하는 운동이어야 하고, 따라서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주의가 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 연대’를 소중히 여긴다.  

 

사회민주주의에서 평등과 공평·공정, 정의

“3억 원짜리 악기와 1천만 원어치의 책은 분명 등가가 아니며 기계적 관점에서는 불평등하다. 그렇지만 두 사람 각각의 개성과 자아실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그 악기와 그 책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평등하며, 그러한 물질적 조건을 제공할 때 비로소 그 두 사람은 완전히 평등해진다”

실질적 자유의 개념은 평등에 대해서도 자유주의와는 다른 내용을 필연적으로 유도한다. 기계적인 형식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향해가는 도상에서 소득과 소유의 제약 때문에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제거하는 것, 즉 정확히 이러한 의미에서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는 이념이 사회민주주의이다. 어떤 사람이 음악의 대가가 되는데 필요한 최고의 소질과 실력을 갖고 있는데도 악기를 살 돈이 없어 그 재능이 썩고 있다면, 그 악기가 3억 원짜리라 해도 그에게 악기를 제공하는 것이 실질적 평등이다. 그에 반해 문필가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이 1천만 원의 책만 가져도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다면 그에게는 1천만 원의 책을 제공한다. 3억 원짜리 악기와 1천만 원어치의 책은 분명 등가가 아니며 기계적 관점에서는 불평등하다. 그렇지만 두 사람 각각의 개성과 자아실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그 악기와 그 책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평등하며, 그러한 물질적 조건을 제공할 때 비로소 그 두 사람은 완전히 평등해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正義(정의)이며, 또한 공정·공평이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절대적인 인격적 평등은 이런 평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물론 인구의 상당수가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존수단을 골고루 마련해주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맞다. 요는 그것을 넘어서는 자아실현의 경우에 대해서도 기계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것이 소련과 동유럽의 기존 공산주의였는데-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5) 사회(민주)주의는 물질적 조건이 지배하는 것 자체를 넘어서자는 기획이다. 기계적인 물질적 평등을 지향하고, 즉 이러한 ‘평등’을 가장 앞세워온 PD 등 한국의 기존 사회주의 운동의 이념을 넘어, 모든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최종적 목표로 삼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처럼 대다수 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서 팔아야만 그 생존이 해결해야 하는 조건에서는 도저히 그러한 자유와 평등을 확보할 수 없다. 몸이 아파 일을 못 나가면 돈이 없고, 그 경우 병이 나도 병원에 갈 수 없으며, 또한 자신과 자식이 원하는 공부, 자아실현을 위한 학습에 필요한 돈을 대 줄 수 없다. 많은 노인들이 노후 준비를 못해 한두 평 월세 방에서 쓸쓸히 살다가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시장을 인정하되 그 바깥에서 최대한 해결책을 구하게 된다. 별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삶의 현실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것이다. 

연대와 시장 경제

“오직 보편적 복지만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넘어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기획이다”

시장 경제 속에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시장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나? 그 비밀의 열쇠는 ‘연대’라는 가치가 쥐고 있다. 보편적 복지가 연대의 구체적인 예가 되는데, 이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보편적 복지에서는 모두가 연대하여 각 개인소득의 일부(최대 50%)를 일반세금과 사회보장세, 사회보험금을 모두 포함한 세금 등으로 납부하고, 가난하건 부자이건 자라나는 세대 모두에게 그들의 적성과 소질, 취향에 맞는 질 좋은 보육과 교육을 제공한다. 자라나는 세대가 성장하면 그 부모 세대 전체의 과거 은공에 대한 보답으로 내 부모만이 아니라 부모 세대 전체에게 노인연금을 지급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정도로, 또는 경제사정이 허락한다면 그 이상으로 노후의 행복을 보장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적절한 시간만 근무하면서 적절한 임금을 받으며, 그들이 낸 건강보험료로 몸이 아플 때는 치료비를 지급받는다. 또한 다양한 이유로 실업자가 된 사람은 무료로 적절한 재교육을 받으며 또한 본인이 원하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생활비와 훈련비를 지급받는다. 이 경우 더 많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혜택이 가므로(필요에 따른 분배의 원칙) <실질적 평등>이 확보된다.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사람, 몸이 더 자주 아픈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며, 따라서 이것이 실질적 평등이다.(6) 이렇게 되면 시장의 변덕스러운 작동에 개개인의 인생과 운명을 맡기지 않아도 되며, 개개인의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 복지국가의 성숙 정도에 비례하여 - 확보해 나갈 수 있다. 

가난한 사람만 선별하여 국가가 돕자는 것 즉, 선별적 복지의 사상은 자유 시장의 작동이 야기하는 불평등과 불안정으로부터 최소한의 안정망만을 확보하자는 견해이고, 결국은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자유주의 또는 온정적 보수주의의 발상이다. 오직 보편적 복지만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넘어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기획이다. 시장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 연대의 원리를, 시장경제의 번영에 근거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여 그 바깥에서 구현하자는 것이다. 

이때 연대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사회구성원 전체이다. 노동자들만의 연대, 농민들만의 연대, 소상공인들만의 연대, 주부들만의 연대와 같은 배타적 연대는 거짓 연대이다.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그래서 자본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정당을 계급정당이라 부른다면 계급정당이 아니라 단호히 국민정당이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시장에서 각자의 이기적 필요에 따라 거래하고 계약을 맺는 행위, 말하자면 ‘시장연대’는 칭송하지만 사회(민주)주의가 말하는 바, 시장에 저항하고 시장 원리와 상충되는 연대에는 기필코 반대한다.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갈라지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으로 이해된 자유와 평등은 당연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어떤 자유주의 세력이 기본권 신장 같은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협조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자유주의 또는 공산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모순되는 관계인데 그에 반해 사회민주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을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으로 비약하는데, 그 비약을 이끄는 것이 연대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의 세 기본 가치인  자유-평등-연대는 서로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다.(7)

 

<자유와 평등, 정의와 연대 (3)>에서 계속

글/조원희

국민대 경상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대표적 저서로 <한국경제의 위기와 개혁과제>(공저·1997), <사회민주주의선언>(공저·2012) 등이 있다.

(3)피로스의승리(Pyrrhic victory) : 패전이나 다름없는 의미 없는 승리. 고대 그리스 지방인 에피로스의 왕 피로스(Pyrrhus)는 로마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신 장수들을 많이 잃어 마지막 최후의 전투에서 패망했다. 이후부터 많은 희생이나 비용의 대가를 치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 부르게 되었다. ‘실속 없는 승리’, ‘상처뿐인 영광’과 동의어로 불린다.

(4)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의 내외부에서 활동하는 많은 담론가들은 지난 수년간 ‘보편적 복지국가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공정·공평의 실현’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적 평등론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평등이야말로 ‘정의’(正義)에 부합한다고 말하면서, 마치 보편적 복지국가(즉 사회민주주의적 평등을 구현하는)는 정의와 무관한 양 말하며 그 중요성을 격하시킨다.

(5) 기존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적 평등(인격적 평등과 물질적 불평등)에 대한 반명제로서 물질적 평등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가치로서의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 기존의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의 자유(소극적 자유)를 부정했고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의 <실질적 자유>(적극적 자유)도 - 말로는 인정했지만 실제 실천에서는 - 부정했다.

(6) 독일 사회민주당의 경우 자유와 정의, 연대를 3대 기본 가치로 표방하는데, 중요한 점은 평등 대신에 정의가 기본 가치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의는 앞에서 우리가 설명한 실질적 평등(실질적 공정·공평의 의미에서)의 의미로 사용된다.

(7) 이 문제에 대한 상론은 조원희・정승일(2012)을 참조. 사회민주주의의 5대 기본 가치에는 자유, 평등, 연대 이외에,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제관계와 관련한 평화와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인 생태가 포함된다. 자유, 평등, 연대, 평화, 생태의 5대가치는 사회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이다. 여타 가치는 이들 기본가치의 파생 범주이다.

<참고 문헌>

가리타니 고진(2010)  <세계사의 구>』, 조영일(역), 도서출판b, 2012.

박호성(2005)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전>』, 책세상.

셰리 버먼(2010) <정치가 우선한다>, 김유진역, ㈜후마니타스.

이근식(2011) <진보적 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최태욱(편저)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폴리테이아.

조원희・정승일(2012) <사회민주주의 선언>, 홍진북스.

Wikipedia(2013) “Social Democracy”,  http://en.wikipedia.org/wiki/Social_democracy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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