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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1)사회민주주의 정치가 한국 정치의 대도약을 이끌 것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성장과 집권 같은 강력한 도전이 있지 않는 한 한국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진심으로 수정자유주의로 전환하는 ‘대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대공황과 전쟁, 그리고 그 이후 번영기에 서구의 정치사가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의 미래 대도약의 출발점은 제대로 된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출현이다..

 

기존 이념의 소진과 황폐화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근현대의 기본적 정치경제 이념은 자유주의(보수)와 사회주의(진보)이다. 이 두 이념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근현대적 경제사회 체제에 인간이 정치적으로 개입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개념 틀을 제공한다. 19세기 이래 이 두 이념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기획(버전)으로 구체화되면서 서로 각축을 벌이며 두 세기에 걸친 역사 발전을 이끌어왔다. 

먼저 등장한 이념은 자유주의였으며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라는 기획으로 19세기 초중반의 유럽을 지배하면서 절대 왕정과 봉건적 경제사회 질서의 해체에 크게 기여했다. 19세기 중반에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출현해 급속히 성장했다. 급기야 19세기 후반에는 제1인터내셔널 및 제2 인터내셔널과 함께 유럽에서 사회주의적 노동계급 정당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 정당들의 이념은 당시 사회민주주의라고 불렸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정치적으로 각축전을 벌이면서 서로 헤게모니 다툼을 벌였는데, 양 진영 간의 경쟁과 협력은 결과적으로 봉건 잔재의 제거와 보통선거권의 확립 같은 일반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리고 민족국가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모두 19세기 말 이래 서구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타락해 서구 열강이 적대적으로 경쟁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현실에 무기력하게 대응했으며,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쇼비니즘)의 이름으로 진행된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다. 양자 모두 러시아의 레닌이 20세기 초반에 주창한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반대, 식민지 지배 반대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했다. 게다가 러시아혁명과 연계되어 조선 등 식민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피압박민족 해방운동에도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양자 모두 – 스웨덴 등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제외할 때 - 1930년대의 대공황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양자 모두 정치경제적 위기의 누적과 그 폭력적 해법으로 등장한 나치즘, 파시즘의 집권과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발생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방인 러시아와 중국  같은 후진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이념이 승리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자유방임 상태로 방치할 경우 스스로의 모순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된다는 사실, 그 결과 빈부격차 등 계급적 모순이 위험한 수준으로 격화된다는 사실, 이렇게 되면 자유주의적 정치 자체가 적대 세력의 공격에 견딜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유주의자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념을 버리고 수정 자유주의 또는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로 변신했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한편으론 혁명적 사회주의를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 경제에 대한 적극적 국가개입과 자본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통제, 그리고 소득재분배와 같은 새로운 방향의 경제사회 정책을 통해 시장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곧 민주적·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희망이었다.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체제를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조하려는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의 경쟁적 노력은 결과적으로 전후 선진국들에서 대번영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이 빈부격차 심화와 빈발하는 불황과 공황을 동반했던 19세기 중후반과 20세기 초반과는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이후 1970년대까지 서구에서는 빈부격차가 축소되고 불황과 금융위기 등이 억제되어 안정적인 시장 경제 관리가 상당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경제성장율 또한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삼십여 년 간 지속된 이 대번영의 시기에 서구에는 (사회)민주주의가 우세를 점하고 (수정)자유주의가 상대적으로 열세이면서도 양자 간에는 서로 평화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계가 유지되었다.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는 모두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규제된 또는 조정된 자본주의와 복지국가를 만들어내자는데 합의했다. 그것은 대타협 또는 ‘합의의 정치’라고 불렸다.  

기존의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가 모두 파산하다

그렇지만 양자 간의 평화적 경쟁과 타협의 정치는 1970년대 중후반에 깨졌다.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동시에 인플레가 가속화하며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전후 합의 체제’가 속수무책으로 갈팡질팡하게 되자,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자유주의의 고전적 요소들이 다시 등장했다. 자유주의는 다시 그 본연의 뿌리로 돌아가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수정자유주의는 폐기되고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부활했으니, 그것을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는 마가렛 대처 수상,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영국과 미국에서 집권 세력으로 등장했는데, 그 이후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IMF와 세계은행, WTO와 OECD 같은 국제적 경제기구들을 지배했으며, 또한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와 유럽중앙은행(ECB)의 탄생과 성장을 이끌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2008년 말 글로벌 경제위기가 도래할 때까지 30년간 전세계를 지배하는 헤게모니적 정치 기획으로 득세했다. 

그 뿌리로 회귀한 자유주의의 현대판 버전인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자신을 내세웠나? 공산주의(혁명적 사회주의)를 급진과격(radical)한 사상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급진 과격’이라는 표현이 진보적 이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 신자유주의의 이념과 그 정치운동이었다. 그것은 급진적인 규제 완화와 사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자유화(개방화), 복지축소를 내세우면서 그 뿌리로 돌아가 19세기적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급진적으로 복구하고자 했다. 더구나 자유 시장 원칙을 경제를 넘어 모든 사회 영역에 침투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영혼까지 이기성과 황금만능주의, 개인주의로 철저하게 개조하려한 매우 근본주의적인(fundamentalist) 사상이었다. 종교적 근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의 정신에 따라 구성된 세계 체제는 결국 고삐 풀린 자본의 투기와 버블을 야기했으며 또한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와 국가 간 양극화를 야기하면서 2008년 말에 스스로 내파(implode)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21세기 버전인 신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한편, 20세기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소련에서 공산주의 -그들의 용어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도 불린다-로 진화했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세계의 여러 후발국들, 특히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와 지역들로 수출되었으며, 그곳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혁명(NLPDR)의 이념 형태를 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이념은 제3세계 또는 개발도상국의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 이념은 중국과 , 그리고 한반도와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그렇지만, 주지하듯이 이 이념은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의 화려한 성과를 배경으로 세계사적으로 더 이상 의미 없는 이념으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경우,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이 이념이 아직도 진보적 이념인양 수용되어 잔존하면서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진보 정치의 미래 기획을 가로막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는, 1990년대 중반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제3의 길’을 천명한 이래 마르크스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버리고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라는 뿌리를 잘라 버림으로써 사실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변신했는데, 그 결과 유럽의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미국의 민주당처럼 되어버렸다.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가 이끈 제3의 길 노동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은 직접적인 책임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리스와 스페인의 경우 집권 사회민주당은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복지축소와 노동권 축소, 재정긴축을 요구하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신자유주의적 주장을 스스로 지지함으로써 사실상 자유주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판명됐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역시 전세계적으로 회의와 불신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특정 방향으로 재해석된 보수(신자유주의)와 진보(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은 둘 다 모두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불황, 그리고 극심한 사회 양극화에 대하여 직간접적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위 두 이념으로는 현재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불행으로부터 인류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데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의 이념적 지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지난 2백년간 융성해온 정치경제적 이념의 소진과 황폐화라고 할 수 있다. 20세 초중반에 발전한 혁명적 사회주의는 1990년대 초반에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전후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수정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각각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로 변신했던 바, 하지만 양자는 공히 2008년 이래  글로벌 경제위기와 대불황의 시대를 낳으면서 현재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21세기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2)>에서 계속

글/조원희

국민대 경상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대표적 저서로 <한국경제의 위기와 개혁과제>(공저·1997), <사회민주주의선언>(공저·2012) 등이 있다.

조원희  sdjournal.korea@gmail.com

 

 

 

이소연 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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